[ESC] 커버스토리
30대 비혼남의 결혼정보업체 단체미팅 참가기
30대 비혼남의 결혼정보업체 단체미팅 참가기
결혼정보업체서 주관한 단체미팅 행사 장면. 사진은 기사와 무관하다. 듀오 제공
어른 60명이 한날한시에 모이면 ‘펑크’ 내는 사람이 한둘은 있기 마련인데, 결석자가 한명도 없었다. 설 연휴를 앞둔 일요일 오후. 남녀 각 30명이 서울 도심 호텔에 모였다. 한 결혼정보업체에서 연 ‘노블레스 멤버십 파티’였다. 쉽게 말해 단체미팅. 10여년 전 입사 직후 해본 4 대 4 미팅이 가장 대규모였는데 30명이라니. 몇년치 미팅과 소개팅을 하루에 다 하는 거잖아. 솔직히, 기대됐다.
그 짧은 순간에도 눈에 띄던 ‘태도’
대체 어떤 기준으로 커플이 되나
지쳐가며 깨달은 ‘선택과 집중’ 짧고도 긴 시간 3분 “주말에 영화를 보러 갑니다. 조조와 심야, 어느 것을 택하시겠어요? 하나, 둘, 셋!” 사회자가 던진 질문에 60명이 일제히 대답하며 상대와 말문을 텄다. “조조”라는 나와 달리 “심야”라고 답한 내 상대가 묻는다. “아침에 일찍 잘 일어나시나보죠?” “혼자 보기엔 심야보다 조조가 편해서요. 하하하.” 소개팅 자리에서 오가는, 돌아서면 기억도 나지 않는 대화가 오간다. 자세를 고쳐 앉고 한숨 돌릴라치면 “자, 여자분들 옆으로 한 칸씩 옮겨주세요”라는 사회자의 안내가 나온다. 한명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3분. 그렇게 여자 5명이 남자 5명과 돌아가면서 3분의 대화를 하고 나면 남자들이 다른 탁자로 옮겨간다. 내가 간 두번째 탁자에서 여성들이 세번째 자리를 옮겼을 즈음, 그러니까 9번째 상대에서 ‘강적’을 만났다. “주말에 운동을 많이 하시나 봐요?” “네.” “어떤 걸 하세요?” “뭐, 이것저것.” “….” 답을 길게 하든지, 질문을 되돌려주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하는데 이 사람은 말이 없다.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라는 마음이 눈으로 읽힌다. 3분이 3시간 같았다. 1년 전쯤 소개팅에서 이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두 시간 내내, 뚱한 표정으로 ‘난 당신이 별로야’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땐 두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3분이니 다행인지도 모른다. 아, 그런데, 이분, 나중에 보니 다른 남성과 커플이 됐다. 행사가 끝날 즈음 깨달았다. 30명의 상대방 모두에게 ‘정성’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타깝게도 4시간30분의 행사가 끝나고 녹초가 돼갈 때쯤 그걸 깨달았다. 어차피 30명 모두에게 ‘집중’해봐야 누가 누군지, 어떤 얘기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라면 숨 고르기를 하며 체력과 정신력을 비축해두는 게 낫다. 현명했던 그 ‘강적’ 여성과 달리, 나 같은 ‘아마추어’들은 어느 순간부터 지친 기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새로 앉은 파트너에게 “힘드시죠?”란 인사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두 번은 못 할 것 같아요”라는 이도 있었다. 두 번은 못하겠지만… 중간에 먹은 저녁이 소화가 되지 않아 속이 불편해질 때쯤 최종 선택의 시간이 왔다. “1~3지망까지 쓰시면 됩니다.” 열심히 생각했다. 예쁜 사람? 잘 웃던 사람? 말이 잘 통하던 사람(고작 3분이지만)? 나를 쓸 것 같은 사람? 5분쯤 고민하다 고향이 전주라던, 친구 같은 느낌을 준 여성을 1지망으로, ‘원래 성격이 그렇다’며 연신 활짝 웃던 사람을 2지망에 썼다. 그걸로 끝내고 싶었으나 주말 오후 고생한 스스로가 안타까워 3지망도 채웠다. 결과는 금방 나왔다. 13쌍의 커플이 탄생했다. 사회자는 “기대한 것보단 적지만 나쁘진 않다”고 했다. ‘강적’과 나의 3지망, 첫 파트너 등등이 다른 남성과 커플이 됐다. ‘강적’의 파트너는 어려 보이고, 공기업에 다니는 남성이었다. 커플이 된 사람들은 어떤 기준으로 상대방을 선택했을지 궁금해졌다. 그들도 나처럼, 친구같이 편해서 또는 긴장된 자리에서 잘 웃어줘서 누군가를 선택했을까? 아니면 3분이라는 짧은 순간에 영적인 교감이나 ‘운명’을 느낀 걸까? 그것도 아니면 예쁘고 잘생겨서, 직업이 좋아 보여서 선택했을까?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덕분인지, 제일 처음 만난 옆자리 파트너를 고른 커플이 많았다. 그나마 상대의 성격과 취향을 파악할 여유가 많았던 걸까. ‘이제 저 13쌍은 카페 같은 곳엘 가서 얘기를 더 하려나…피곤할 텐데’ 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걱정을 하면서 파티는 끝이 났다. 혹시 ‘네 결과는 어떻게 됐냐?’고 궁금해하는 당신은, 이 기사를 대충 읽은 사람이다. 결과가 좋았다면 ‘1지망이 어떻고, 2지망이 어떻고’ 하는 얘길 썼겠나? 물론 궁금하긴 하다. 나의 1지망과 2지망은 누굴 썼을까? 내가 1지망, 2지망에 자기들 이름을 쓴 걸 알았다면?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다. 아, 이런 생각 자체가 아마추어 같다. 대신 “단체미팅 해보니 어떻더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두 번은 못하겠는데 다시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은 30대인 ‘결혼하고 싶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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