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
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저 계약서만 손에 넣으면 만사가 끝인데….”
신한은행 여자농구단 김동윤 사무국장의 속은 타들어갔다. 여자프로농구 6개 구단은 하은주를 잡기 위해 불꽃을 튀겼다. 하은주는 결국 신한은행 품에 안겼다. 김 국장은 8번의 만남 끝에 마침내 하씨한테서 ‘구겨진 계약서’를 받아냈다. 김 국장은 “마치 천하를 얻은 듯했다”며 쾌재를 불렀다. 지난해 7월말 얘기다.
그로부터 9개월여 흐른 2007년 4월5일 장충체육관. 신한은행은 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 챔프전에서 ‘마지막 승부’(5차전)를 벌이는 사투 끝에 극적으로 우승했다. 하은주가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었다. 하동기씨 얼굴엔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은주가 저렇게 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농구선수 출신인 하씨는 딸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은주는 서울 선일초등 4년 때 농구공을 잡았다.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을 도맡았다. 6학년 때 무릎 연골이 부서졌다. 선일여중에 진학했지만 더는 선수생활이 어려웠다. 학교쪽 요구로 선수포기각서를 썼다. 학교쪽은 하은주가 다른 팀에 가는 것이 두려웠다. 불과 열다섯 나이에 국내에선 설 땅이 사라졌다.
어린 소녀는 눈물을 머금고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소녀는 향수병에 시달렸다. 재활과 공부를 병행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고교를 졸업하자 힘든 선택이 그를 가로막았다. 일본 실업팀은 외국인 선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일본 국적을 선택하고 샹송화장품에 입단했다. 일본은 그를 국가대표로 발탁했다. 하지만 그는 한사코 거부했다. “귀화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일장기는 차마….”
그의 유니폼엔 지금, 일장기 대신 꿈에 그리던 태극기가 달려 있다. 그는 베이징올림픽 티켓이 걸린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중이다. 오늘은 결승전이나 다름없는 일본 전에 출전한다. 베이징에 가려면 꼭 넘어야 할 산이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나라를 생각하는 ‘현충일’. 한때 자신을 버렸던 조국의 영광을 위해 그는 코트에 몸을 던질 각오다.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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