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
소주를 받고 잔을 돌려줬더니, 사이다를 부어달란다. 힘겨운 여수 전지훈련을 마친 뒤풀이 자리. 주희정(31·안양 KT&G)은 끝내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주희정은 ‘연습벌레’다. 주위에서 부상이 염려돼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몸을 단련시킨다. 운전할 때도 한 손에는 아령이 들려 있다. 유도훈 KT&G 감독은 “나도 독종 소리 많이 들었지만 저 녀석은 나보다 한수 위”라며 웃었다. 그렇다고 ‘독불장군’은 아니다. 매사 겸손하고 남을 배려할 줄도 안다. 김호겸 사무국장은 “희정이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지난 시즌 뒤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주희정의 연봉을 만족시켜주지 못해서다. 하지만 주희정은 군말없이 계약서에 사인했다.
주희정은 삼성 시절 우승도 해보고,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상(MVP)도 받았다. 지난해엔 가드인데도 서장훈을 제치고 국내선수 튄공잡기(4.77)왕을 차지했다. 물론 도움주기(7.96)도 1위에 오르며 포인트가드 본연의 임무도 완수했다. 최고스타 자리에 올랐으니 이제는 쉬엄쉬엄 요령도 피울 만한데 그런 기미가 없다.
그것은 애틋한 ‘가족애’ 때문이다. 주희정은 고려대 2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 때(1997년) 막 탄생한 프로 무대에 뛰어들어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 얼굴도 모른다. 어머니는 태어난 지 100일도 안돼 집을 나갔다. 아버지도 암덩어리를 몸에 지닌 채 99년 돌아올 때까지 딱 6번 봤다. 아버지는 영화 <친구>에 나오는 부산 칠성파에 몸담고 있었다. 주희정은 할머니 손에 컸다.
그는 아버지를 용서했다. 부산에 새어머니와 함께 살 집을 마련해 줬고, 병든 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어릴 적부터 소원이었던 아버지와 목욕도 맘껏 했다. 그런데 2002년 1월, 느닷없이 할머니가 눈을 감았다. 칠십 평생 손자 뒷바라지만 하다가 손자 결혼식을 눈앞에 두고 쓸쓸이 세상을 등진 것이다. 아버지는 2003년 4월, 간암으로 쉰넷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주희정은 그러나 외롭지 않다. 할머니와 아버지 빈 자리는 세살바기 딸 서희와 곧 태어날 서희 동생이 채워줄 것이다.
프로농구 원년부터 11시즌을 달려왔지만 그의 나이 이제 겨우 만 서른하나. 마흔까지 20시즌을 채우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아 보인다. 그에겐 특별한 ‘가족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주희정(31·안양 KT&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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