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300m를 넘는 백두대간의 함백산 만항재. 낮게 깔린 6월의 잿빛 구름이 등산객들과 나란히 걷는다. 숲에는 오직 사람의 숨소리와 바람이 잎사귀를 훑어내는 소리뿐이다. 짙푸른 참나무숲 사이로 희고 노란 야생화가 지천이다. 사상자, 꽃쥐손이, 요강나물, 미나리아재비, 쥐오줌풀, 하늘매발톱, 줄딸기꽃, 미나리냉이, 노랑장대, 풀솜대, 벌깨덩굴, 눈개승마, 매자나무꽃…. 내 몸을 낮춰 바짝 웅크려야만 볼 수 있는 겸손한 꽃들. 세상도 이와 같을 것이다. 몸을 낮춰야 가슴까지 차오르는 기쁨을 맛볼 수 있으니까. 구름 사이로 볕이 비치는가 싶더니 소나기가 한바탕 헤살을 놓는다. 안개가 몰려온다. 실루엣만 보이는 원시향, 천상의 에덴동산이다. 숲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주는 날씨의 요술이 신기하기만 하다. 안개비는 그새 두문동재의 금대봉을 삼켜버렸다. 태백=사진·글 <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학수그룹홈은 10명의 독거노인 할머니가 모여 사는 생활공동체다. 이곳에서 할머니들이 직접 밥을 하고 청소도 하며 같이 잠을 잔다. 김제시가 기존에 경로당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2007년 취사·난방·목욕 등 공동체 생활이 가능한 곳으로 개조했다. 시골의 고령화로 고독사와 노인 우울증이 증가하자 김제시가 내놓은 노인복지 정책(한울타리 행복의 집)이다. 그룹홈에 대한 반응이 좋자 김제시는 111개소까지 그룹홈을 늘렸다. 지금 시 전체 독거노인 7131명 중 1096명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독거노인 문제의 정책 대안으로 김제시의 그룹홈이 좋은 모델이라는 소문이 나 지금은 비슷한 그룹홈이 전국 40개 자치단체 227곳에 생겼다. 그룹홈이 생기자 가장 먼저 반긴 이들은 자식들이다. 시골에 고령의 부모를 둔 자식들은 부모가 전화라도 받지 않으면 걱정이 앞서 이장, 면사무소, 보건소 등에 전화를 돌린다. 안부가 확인될 때까지 안절부절못했다. 이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룹홈으로 전화하면 부모님이 텃밭, 집, 보건소 등 어느 곳에 있는지 소재를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거주하고 있는 노인들의 만족도도 높다. 학수그룹홈의 박용이(77) 할머니는 “고혈압으로 쓰러져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많이 힘들었어. 여기서 식사도 꼬박꼬박 하고 서로 의지하며 생활하다 보니, 건강도 좋아지고 마을 노인들끼리도 사이가 좋아졌어”라고 말했다. 예수병원 산학협력단의 그룹홈 입소자들을 상대로 한 외로움 정도 조사에서도 93.3%가 외로움이 줄었다고 대답했다. 우리나라 전체 독거노인은 120만여 명이다. 정부는 2030년이면 인구의 4분의 1이 노인이 될 만큼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독거노인도 따라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그룹홈을 독거노인 문제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앞으로도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 많은 것들이 바뀌고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라지는 것들을, 사라져가는 현상들을 경험하고 바라본다. 강원도 태백과 삼척시를 연결하는 (통리역~도계역 간) 스위치백(switchback) 선로가 다음달 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40년 8월 개통한 스위치백은 일제강점기 물자를 수송하려고 생겼다. 스위치백은 가파른 경사구간의 높이 차이를 극복하기위해 전진과 후진 지그재그로 움직여 기울기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태백 탄광촌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이 선로는 435m의 높이를 굽이굽이 뱀처럼 돌아서 16.5km를 오르내린다. 루프식으로 설계된 솔안터널이 생겨 기차는 더 이상 힘겹게 오르지 않아도 된다. 분명 더 좋아지고 있는데, 더 빨라지고 있는데…. 뭔가 허전하다. 그래서일까, 오늘도 이 구간엔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서성거리며 사진을 찍는다. 거꾸로 달리는 기차에서 남겨놓은 사진을 보며 아직 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아날로그적인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