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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우리도 킹콩이 어디서 나올지 다 안다고

등록 2017-10-29 12:14수정 2017-12-03 16:20

[애니멀피플] 김예나의 영장류 마음 엿보기
유인원에게 영화 보여준 뒤 ‘미래 예측’ 능력 확인
킹콩이 연구자를 공격하는 영상을 침팬지에게 보여주고, 하루 뒤 다시 보여줌으로써 이를 기억하는지 살펴봤다.
킹콩이 연구자를 공격하는 영상을 침팬지에게 보여주고, 하루 뒤 다시 보여줌으로써 이를 기억하는지 살펴봤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발견하면 자연스레 눈이 가는 것은 인간이나 침팬지나 마찬가지다.”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시작하냐고? 지난 연재에서 예고했듯이 오늘 들려줄 이야기는 영장류의 ‘미래 예측’이다.

동물이 미래 예측을 하는지 알아보는 방법에는 간단한 행동 관찰부터 도구나 먹이 숨기기 실험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연구는 ‘눈(시선)의 움직임’(Eye-tracking·아이트레킹)을 활용한 연구다. 긴장했을 때 심박 수가 빨라지거나 손에 땀이 나는 등 생리적 변화와 유사하게 눈동자의 움직임은 인간의 현재 심리상태를 비교적 정직하게 반영한다. 그래서 아이트레킹을 활용한 연구는 말로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어린아이의 인지연구를 비롯해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된다.

동물의 시선은 미래를 향한다

이를테면 광고에 쓰이는 여러 이미지 중 실제 시선이 가장 먼저, 또 많이 가는 부분을 알아봄으로써 고객의 무의식 중 선호도를 파악하는 것이 그렇다. 더 와 닿는 예시를 찾자면, 애인과 길을 걷고 있을 때 다른 매력적인 이성을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나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자연스레 눈이 갈 만큼 눈은 정직하다. 마찬가지로 침팬지와 오랑우탄 등의 유인원도 눈동자의 움직임이 그 당시 의식의 흐름을 반영한다.

아이트레킹을 이용해서 유인원의 인지연구를 처음 시작한 연구자는 후미히로 카노 박사(현 교토대학교 조교수)로, 나와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텁다. 사심을 조금 담아 그의 연구를 소개해보겠다. 그 친구는 늘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연구를 해왔는데, 저명한 생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게재된 이번 연구 역시 그렇다.

그림1. 실험 1과 실험 2의 영상 소개. Target door(목표 문)과 tool(도구)이 킹콩이 들어온 문과 킹콩을 공격했던 무기를 나타내며, Distractor door(주의분산용 문)과 tool(도구)에 시선이 머무는 시간의 비교를 통해 침팬지와 보노보의 미래예측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림1. 실험 1과 실험 2의 영상 소개. Target door(목표 문)과 tool(도구)이 킹콩이 들어온 문과 킹콩을 공격했던 무기를 나타내며, Distractor door(주의분산용 문)과 tool(도구)에 시선이 머무는 시간의 비교를 통해 침팬지와 보노보의 미래예측 능력을 보여주었다.
일단 실험에 참여하는 침팬지와 보노보에게 보여주려고 후미히로 카노는 친구와 함께 직접 출연하여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는 침팬지와 보노보가 평소 지내는 내실에 연구자 둘이 똑같은 옷을 입고 앞을 보고 인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그림 1, 유튜브 영상 참고). 둘은 바닥에 떨어진 바나나를 주워 먹고 평소에 침팬지와 보노보가 이동해 다니는 문으로 향한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갑자기 경보등이 켜지고 오른쪽 문에서 킹콩 한 마리가 나와 문 앞의 연구자를 공격한 뒤 바나나를 빼앗아 같은 문으로 달아난다.

첫 번째 실험을 위해 만든 영화. 24시간 뒤 틀어줄 땐 보노보의 시선은 킹콩이 나오는 곳을 향한다.

그림 2. 빨갛게 표시된 동그라미가 시선이 머물고 이동하는 것을 나타낸다. 위의 영상에서 보노보는 킹콩을 바라보고 있다.
그림 2. 빨갛게 표시된 동그라미가 시선이 머물고 이동하는 것을 나타낸다. 위의 영상에서 보노보는 킹콩을 바라보고 있다.
약 30초 분량의 이 영화를 바라보는 유인원 눈의 움직임이 아이트레킹을 통해 기록되는데, 그림 2에서 보이는 빨간 점이 침팬지와 보노보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빨간 점이 더 크면 클수록 오래 바라보았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일상적이지 않거나 감정적 또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경우 이를 더 잘 기억하기 때문에 위의 영상에서 킹콩이 나타나 연구자를 공격한 장면이 침팬지와 보노보에게도 더 잘 기억되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미래 예측은 정확히 24시간이 지난 뒤 같은 영상을 다시 보여줬을 때 나타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눈의 움직임은 현재 뇌에서 벌어지는 의식의 흐름을 반영한다. 만약 침팬지와 보노보가 하루 전에 보았던 영상의 내용을 기억한다면(일화적 기억), 다시 한 번 이 영상을 볼 때 킹콩이 어디에서 나올 것인지, 어떤 문으로 도망갈 것인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침팬지와 보노보는 영상에서 실제 행동이 나타나기 전 그 위치로 시선을 이동할 것이다. 이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침팬지와 보노보의 시선이 킹콩이 나타나기 직전에 킹콩이 나온 문에서 더 오래 머문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일화적 기억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이 있었는지 세 가지를 기억하는 것인데, 첫 번째 실험에서는 킹콩이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 것인지에 대한 예측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 실험에서 보여준 영상. 두 번째 틀어줄 때 집어 드는 망치에 시선이 미리 가 있다.

킹콩이 공격할 부위를 예측할까?

두 번째 실험에서는 철망을 사이로 연구자와 킹콩이 놀고 있다가 킹콩이 연구자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연구자를 공격한 뒤 뒤로 숨는다(그림 1). 그러면 연구자는 앞에 놓인 두 가지의 무기 중 하나를 선택하여 킹콩을 공격해 복수한다. 24시간이 지난 뒤에 유인원에게 똑같은 영상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두 가지 무기의 위치가 서로 바뀌어 있다. 하지만 유인원은 연구자가 24시간 전에 선택했던 무기를 더 오래 보았다. 이는 단순한 위치 정보의 기억이 아닌 ‘무엇’에 대한 기억까지 침팬지와 보노보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들이 일화적 기억의 인출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이처럼 참신하고 재미있는 실험이 또 어디 있을까? 물론 아주 많다. 다음에도 또 재미있는 연구를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추신: 스웨덴의 한 동물원에 사는 수컷 침팬지는 관람객이 없는 이른 아침이나 겨울철 휴관 시에는 얌전한 척 있다가 관람객이 나타나면 은닉장소에 미리 숨겨둔 돌을 꺼내 관람객에게 던졌다. 이 녀석은 특히 사육사들이 방사장의 돌을 다 없애버리자 방사장 외벽 콘크리트 조각들을 떼어내 돌을 던졌다고 하니 치밀하기 그지없다. 사육사들을 힘들게 한 이 침팬지의 ‘미래 계획 행동’ 역시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게재되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읽어보시기를.

■ 기사가 참고한 논문

Mathias Osvath (2009). Spontaneous planning for future stone throwing by a male chimpanzee. Current Biology. 19: 190-191

Fumihiro Kano and Satoshi Hirata (2015). Great Apes Make Anticipatory Looks Based on Long- Term Memory of Single Events. Current Biology. 25: 2513-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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