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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내 친구 삼팔이는 어디로 갔을까

등록 2017-11-06 11:10수정 2017-11-16 10:34

[애니멀피플] 김하연의 묻지 않는 고양이
도시의 천덕꾸러기라고요?
마음을 주면 더 큰 선물을 주며
교감하는 오랜 우리의 이웃이랍니다
꼬리가 짧은 고양이 삼팔이는 도시의 주차장에 살았다. 아이를 품은 엄마의 영양이 충분하지 못하면 꼬리가 짧은 고양이가 태어난다.
꼬리가 짧은 고양이 삼팔이는 도시의 주차장에 살았다. 아이를 품은 엄마의 영양이 충분하지 못하면 꼬리가 짧은 고양이가 태어난다.

삼팔이는 어느 아파트 입구 앞 빌라 주차장에서 태어난 4마리 중에 하나였다. 초가을에 태어나 첫눈이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형제들과 함께 엄마로부터 ‘독립을 당했다’. 텃밭이 있는 옆 골목으로 떠난 엄마는 다시 아이들을 찾지 않았다. 빌라 주차장은 좁았지만 점점 추워지는 주차장 바깥보다 따뜻했다. 주차장 구석에 작은 그릇에는 아이들의 위한 사료와 물이 놓였다. 엄마 없이도 아이들은 자고 먹고 놀면서 살았다. 아이들의 장난이 심해지고 주차장이 대소변 냄새로 가득차고 시도 때도 없이 차 위로 올라가기 앉아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삼팔이는 밥을 주면 보답하듯 쥐를 물어다 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선물은 가만히 마주하는 따뜻한 눈빛이었다.
삼팔이는 밥을 주면 보답하듯 쥐를 물어다 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선물은 가만히 마주하는 따뜻한 눈빛이었다.
가끔 쥐를 잡아 놓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 아이들이 그곳에서 지내는 것을 주민들이 허락하긴 어려웠다. 밥과 물그릇이 치워졌다. 아이들은 허기에 쫓겨 빌라 밖으로 밀려나 뿔뿔이 흩어졌다. 다른 형제들의 행방은 쫓을 수 없었지만, 삼팔이는 건너편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가 집을 삼은 것을 확인했다. 삼팔이와의 인연은 그때부터였다. 2년 동안 삼팔이는 나를 기다렸다. 나는 밥과 간식을 주고, 삼팔이는 눈빛을 주고 마음을 주고 잊을 만하면 쥐도 선물로 내주었다. 짧았지만 길었던 그 시간 우리는 분명 이웃이며 친구로 살았다. 아무 기별 없이 사라지기 전까지.

삼팔이는 2년간 우리의 친구이자 이웃으로 지냈으나 어느날 기별없이 사라졌다.
삼팔이는 2년간 우리의 친구이자 이웃으로 지냈으나 어느날 기별없이 사라졌다.
5천년 전 사막에서 살던 그들이 사람 집으로 들어와 우리 무릎에 웅크리고 누웠을 때부터 그들이 우리의 이웃이 아닌 적이 없었다. 눈빛으로는 사람 마음을 녹이고, 날카로운 발톱으로는 우리의 곡식을 지켰다. 덕분에 신으로 추앙받은 적도 있었지만 만사 귀찮아하는 성격 탓에, 그들은 그냥 이웃으로 사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다 영문도 모르고 중세 시대 마녀의 상징으로 취급받았을 때도, 산업화가 시작되어 천덕꾸러기 신세로 길로 내쳐졌을 때도, 온갖 편견과 오해의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더라도, 그들은 우리 곁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관절에 좋다며 삶아져 사람에게 먹혀도, 달궈진 쇠꼬챙이에 찔려서 죽어도, 목이 잘려 죽어도, 산 채로 땅에 묻혀도. 달리는 차에 치여 엄마와 형제가 눈앞에서 죽어가도.

이제, 이 가여운 이웃을 우리가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이 땅의 많은 삼팔이들은 우리 곁을 살아내고 있다. 길고양이라는 이름으로.

글·사진 김하연 길고양이 사진가

길고양이 사진가 ‘김하연의 묻지 않는 고양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아무도 안부를 궁금해하지 않는 존재인 동시에,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살펴 달라 묻지 않는 길고양이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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