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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늘 치킨 두 조각 먹는 내 친구, 호식이

등록 2018-08-27 12:07수정 2018-08-27 18:14

[애니멀피플] 김하연의 묻지 않는 고양이
영역 싸움에 밀려 골목을 떠난 호식이
중성화 후 ‘마당냥이’가 돼 다시 만났다
호식이는 만날 때마다 나에게 뭘 맡겨놓은 듯 보챘고, 닭가슴살을 주면 늘 두 조각씩 먹고 갈 정도로 식성이 좋았다.
호식이는 만날 때마다 나에게 뭘 맡겨놓은 듯 보챘고, 닭가슴살을 주면 늘 두 조각씩 먹고 갈 정도로 식성이 좋았다.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나에게 늘 받기만 하는 친구였다. 그것도 늘 두 개를 받았다. 받기만 하면서 울고 불며 보채기 일쑤였다. 늘 같은 자리에 있었으면 했지만 늘 자리를 옮겨 만났다. 멀리 가지 않고 딱 찾을 수 있을 만큼만. 어떤 날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등장해 당황하기도 했다. 그때도 울고불고 보채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돌아다닌 이유가 동네 힘센 애들에게 쫓겨 다녀서 그랬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쓰다듬는 내 손 대신 무언가를 기다리며 반대편 손을 바라보고 있는 호식이.
쓰다듬는 내 손 대신 무언가를 기다리며 반대편 손을 바라보고 있는 호식이.
뚱한 표정이지만 오랜만에 봤는데도 반갑게 뒹굴며 아는 척을 해준 호식이.
뚱한 표정이지만 오랜만에 봤는데도 반갑게 뒹굴며 아는 척을 해준 호식이.
맞고 다니지만 말고 붙어 싸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 친구는 싸움을 시작했다. 가끔 이기는 것 같기는 했지만 온몸에 흉터가 쌓였고 만날 기회가 줄었다. 싸움도 답은 아니었다. 다시 싸우지 않았으면 했다. 싸울 수 없게 중성화 수술(TNR)을 해줬더니 친구는 골목을 떠났다. 길고양이들은 중성화 수술을 하면, 제 영역에서 쫓겨나더라도 안정적인 밥 자리를 찾아 머무는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떠난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골목을 떠나 담장 넘어 자리를 잡은 곳은 어느 집 마당. 다행히 집 주인은 친구에게 집도 만들어 주고 밥도 챙겨주었다. 그렇게 친구는 나를 잊고 골목을 잊었다. 못 보는 것이 무슨 상관인가! 친구가 안전하다면. 친구가 편안하다면. 그러나 친구가 사라진 골목은 텅 비어 보였다.

“뭐 없냐”는 표정의 호식이. 귀를 양 옆으로 눕힌 채 인내하며 닭가슴살을 기다리고 있다.
“뭐 없냐”는 표정의 호식이. 귀를 양 옆으로 눕힌 채 인내하며 닭가슴살을 기다리고 있다.
늘 닭가슴살 두 개를 먹어치우는 호식이. 골목 친구에서 안전한 곳에 터전을 마련한 ‘마당냥이’가 됐다.
늘 닭가슴살 두 개를 먹어치우는 호식이. 골목 친구에서 안전한 곳에 터전을 마련한 ‘마당냥이’가 됐다.
8개월 만이었다. 친구가 사는 집을 지나다가 혹시 해서 담 아래로 고개를 숙이는 데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친구는 기꺼이 문밖으로 나와서 내게 악수하듯이 몸을 비볐다. 나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반가워 이런저런 말을 거는데, 친구는 자꾸 내 손만 쳐다본다. 닭가슴살을 줬다. 예전처럼 하나는 정신없이 먹어치우고 두 번째 것은 코로 한번 냄새를 맡고 입으로 핥은 뒤 조금씩 찢어서 먹었다. 변하지 않은 식성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친구는 등산복 차림으로 뒷짐 지고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남자를 보더니 담장 위로 뛰어 올라갔다. 가다가 고개 돌려 날 한 번 쳐다본다. 그리고 마당으로 내려갔다.

친구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언제 볼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친구가 있는 집을 기웃거렸다. 또 보고 싶어서. 친구 이름은 호식이. 닭 가슴살을 늘 두 개 먹는 식성 때문에 붙여준 이름이다. 호식아, 꼭 또 보자.

글·사진 김하연 길고양이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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