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줘서 고맙다는 뜻일까. 고등어 무늬 고양이가 만족스럽단 표정으로 내 다리에 제 머리를 부비고 있다.
겨울이 되면 쌓인 눈과 옷을 아무리 껴입어도 파고드는 추위에 힘들다. 봄이 되면 느긋해지지 못하는 길고양이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다. 여름이면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와 밤에도 누그러지지 않는 더위 때문에 골목으로 나오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 가을이어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배고픈 길고양이에게 밥 한 끼 챙기는 일은 사계절이 모두 힘들다. 그만두고 싶기도 하다, 솔직히. 그러나 생각만 할 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의 삶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새끼 넷이 쓰레기 더미를 허겁지겁 뒤지는 사이, 뒤에 앉아서 텅 빈 눈빛으로 새벽 골목을 두리번거리던 어미 ‘삼색이’ 모습이 떠오른다. 별이 된 줄만 알았던 ‘고등어 태비’가 초췌한 모습으로 우리가 만나던 그 자리에 석달만에 나타나 기다리던 모습이 기억난다.
매정하고 단호한 길고양이 경고문과 매몰찬 고함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땐, 쥐 잡아서 세상 가장 귀한 선물처럼 내 앞에 놓고 간 노랑이의 다소곳한 어깨가 생각난다. ‘이제 더는 안 될 것 같아’하며 고개 돌리고 싶을 때, 세상 가벼운 걸음걸이로 다가와 나만 똑바로 쳐다보고 꼬리를 치켜세운 ‘젖소’를 떠올린다.
그루밍도 제대로 못해 온 얼굴과 다리가 회색으로 물든 어린 고양이가 먹을 것을 기다리며 바라보고 있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 이들을 외면하고 싶었을 때, 어딜 가냐는 듯 꼬리를 치켜세운 채 나만 바라보는 고양이.
몸살이 심해 일어나기 힘들었을 때, 구내염이 심해 혀가 빠지고 침이 땅에 닿을 정도로 흘러내려도 먹겠다고, 살겠다고 기다리는 ‘치즈 태비’가 눈에 밟힌다. 처음 본 사람에게 밑도 끝도 없이 미안하다고 말을 한 뒤 자존감이 무너져 무릎이 꺾일 땐, 사료 한 줌 줬다고 뭐 그리 고마운지 온몸을 던져 내 다리 구석구석을 부비는 ‘회색 태비’가 생각난다. 줄어가는 통장 잔고와 늘어가는 카드 값에 눌려 죽을 것 같을 때는 오래 기다렸다고 어서 달라고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이 어른거린다.
난 틀렸다. 오래전에 틀려버렸다. 힘들다고 포기하거나 뿌리치기에는. 나는, 그리고 어쩌면 그들의 삶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당신도 틀렸다. 틀려버렸다면 그냥 지키는 수밖에 없다. 그들이 우리 곁에서 배고픔을 잠시 잊고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뭐라도 해야 한다.
글·사진 김하연 길고양이 사진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골목 한 귀퉁이에서 나를 기다리는 이들의 눈을 생각하면, 주민들에게 수치스러운 말을 들어도 밥 챙기는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
새끼 고양이들이 허기에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
네 다리, 꼬리를 얌전하게 모은 채 식사 시간을 기다리는 고양이. 이런 눈으로 늘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