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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귀 한쪽 차이로 너무 다른 운명

등록 2017-12-28 15:47수정 2017-12-28 17:34

[애니멀피플] 김하연의 묻지 않는 고양이
1년 터울 고양이 자매 향이와 단이
언니는 TNR 이후 영역에서 밀려 나고
동생은 새끼 낳아 길에서 삶 이어가
공존 방식을 곱씹게 하는 두 마리의 삶
왼쪽 귀 끝부분이 잘린 향이를 후미진 골목에서 만났다. 털을 단장할 틈도 없이 쫓기며 사는지 몰골이 허름하다.
왼쪽 귀 끝부분이 잘린 향이를 후미진 골목에서 만났다. 털을 단장할 틈도 없이 쫓기며 사는지 몰골이 허름하다.
향이와 단이는 1년 차이로 태어났다. 다른 남자 형제들은 아깽이 시절을 지나서 뿔뿔이 흩어졌지만 향이와 단이는 태어난 곳에서 살면서 첫 출산을 했다. 둘은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새끼를 낳았지만 새끼들 대부분이 별이 되었다. 처음이니까. 경험이 없었으니까. 주인 잃은 젖은 혼자서 퉁퉁 불어 올랐다.

어찌어찌 한 마리씩 살려서 독립을 시켰을 무렵 자매 중에 언니 향이는 사라졌다가 며칠 후에 귀 한쪽이 잘려서 돌아왔다. 누군가에게 잡혀서 중성화 수술을 한 것이다.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출산과 육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 못 해준 것이 미안했다. 그런데 향이는 며칠 있다가 다시 사라졌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향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못한 것 같았다.

그로부터 몇 달 후 향이를 만난 곳은 원래 살던 곳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골목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다. 좋아했던 닭가슴살을 주려고 다가갔지만 쏜살같이 차 밑으로 들어가서 숨어 버렸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경계심만 남은 것 같다. 그리고 다시 계절이 다섯 번 바뀌고 나서 향이를 다시 만났다. 내가 놓아두는 밥자리에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털은 꼬일대로 꼬였고 눈빛은 꺾여있었다. 그루밍을 할 여유도 없이 쫓기듯이 사는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새끼 고양이 다섯마리를 돌보다 지친 단이가 육아에서 잠시 벗어나 벽에 등을 대고 쉬고 있다.
새끼 고양이 다섯마리를 돌보다 지친 단이가 육아에서 잠시 벗어나 벽에 등을 대고 쉬고 있다.
도시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 또 길고양이들을 위해서 ‘티앤아르’(TNR·길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수술을 하고 다시 원래 살던 자리에 방사하는 사업)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TNR은 과정이지 목적이 아니다. 즉 TNR을 하는 순간부터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사는 골목의 상황과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아이들의 숫자와 성향까지 파악해서 수술이 최선인지 아닌지를 선택해야 하고, 수술 후에 아이를 돌보는 문제까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해야한다. 특히 길고양이에게 밥 정도는 주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인식 확산시킬 수 있는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을 지방자치단체의 주도로 반드시 병행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의 TNR 정책은 오로지 ‘몇 마리를 수술해주냐’에만 관심 있다. TNR 정책이 2008년부터 시행된 여러 지방자치단체의 공식적인 길고양이 정책이지만,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홍보를 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거의 모른다고 봐야 한다. 전단지 하나 만들어 배포하는 홍보 빼고 거의 없다. 그러니 길고양이 귀가 왜 잘려있는지 주민 대부분은 모른다는 뜻이다. 잡아다 수술만 해주면 뭐 하나. 아는 사람이 없는데. 단지 길고양이의 울음소리 민원에 대응하는 정책으로 시작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결과 2015년 서울시에 밝힌 서울시 길고양이 중성화 비율은 약 11%라고 한다. 8년동안 저 정도라면 수술 전후 길고양이 관리를 고사하고 홍보도 거의 하지 않았다는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경계심이 강해진 향이는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자 먹을 것도 마다하고 멀찍이 떨어졌다.
경계심이 강해진 향이는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자 먹을 것도 마다하고 멀찍이 떨어졌다.
단이는 요즘 한창 육아 중이다. 다섯 아이를 돌보다 보니 힘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아이들이 잠을 자고 있는 틈에 잠시 나와서 벽에 기대어 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다. 저런 모습에 또 고민을 또 하게 된다. 그러나 쉽게 선택할 수가 없다. 사는 곳의 환경과 언니 향이를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언니 향이와 동생 단이의 모습을 함께 보고 있으려고 그 고민이 더 깊어진다. 향이가 단이가 살고 있는 서울시 관악구는 올해 주민참여예산으로 진행되었던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을 내년에는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한다. 예산이 없어서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TNR 예산을 늘이고 길고양이 화장실 사업을 새로 시작한다고 한다. 이상하다. 길고양이와의 공존을 위한 꾸준히 해야할 공식 급식소 사업은 사라지고 단기적인 민원 해소를 위한 TNR 비용과 화장실 사업 신설이라니. 공존보단 민원 해소가 우선인 것 같다. 그러면 결국 피해보는 것은 길고양이 밖에 없다. 사람들이 마음대로 귀를 잘라냈으면 눈빛 정도는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닌가.

글·사진 김하연 길고양이 사진가

단이가 먹이를 물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
단이가 먹이를 물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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