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빌라 현관문에 붙어 있던 안내문 아래에서 새끼 고양이가 마치 구해달라는 듯 울고 있었다.
빌라 현관문의 불이 켜진다. 새벽 3시. 이 시간에 집을 나서는 이가 누군지 궁금해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 기척이 없다. 현관문 불이 다시 꺼진다. 다시 켜졌다. 고장 났나? 또 꺼진다, 켜진다. 이상하다 싶어 현관문을 바라보는데 안쪽에서 작은 움직임이 보였다. 다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실내등이 켜지고. 현관문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고양이가 보였다. 깜박거리는 불빛의 정체는 고양이가 움직일 때마다 실내등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였다. 마치 조난해 구조 요청하는 신호처럼.
고양이는 날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울기 시작했다. 울음소리의 크기로 보나 몸집으로 보아 늦여름에 태어나 초겨울에 독립한 아이로 보인다. 아마도 한겨울 바람을 피할 곳을 찾다가 빌라 현관문에서 흘러나오는 온기에 홀리듯이 들어왔다가 문이 닫히면서 갇혀버린 것 같았다. 현관문에 붙은 안내문을 보고 닫힌 문부터 열어 놓았다. ‘고양이가 자주 들어오니 현관문을 닫아주세요’라고 쓰인 안내문을 코팅해서 붙여 놓을 정도라면, 저 아이를 보고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테니까. 쫓겨나는 것은 당연하고 심하면 발길질이나 다른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다.
온기를 찾아 건물 안으로 찾아들었지만 오도 가도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던 고양이.
열린 문밖에서 나오라는 손짓에 아이는 야옹거리고만 있다. 막상 문이 열리니까 나오기 싫은가 보다. 그래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다. 한두 걸음 다가가자 앉아 있던 아이가 계단으로 쪼르륵 올라가 앉는다. 멀리 달아나지 않고 딱 4계단만. 그러다 내가 등을 돌려 걸어가자 아이가 현관문 틈으로 쏜살같이 나와 내 다리 옆으로 뛰어간다. 멀리 가지 않고 차 밑으로 숨긴 채 아까보다 큰 소리로 운다. 배도 고팠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일단 문을 닫고 그릇에 사료를 담고 캔 하나 따서 올려 앞에 놔주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하얀 그릇 앞으로 성큼 다가와 고개를 넣고 먹기 시작한다. 가로등만 깔린 침묵하는 골목 위로 작은 고양이 배가 채워지는 소리가 낮게 깔리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저 아이는 다 먹고 나면 어디로 가야 할까. 잠시 허기가 채워졌다고 추위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바람을 피해 추위를 막을 곳을 다시 찾아야 한다. 그러다 문이 열려 있는 집이 있다면 다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며 차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겨울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고양이가 귀찮고, 출근할 때 차에 고양이가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번거롭다면, 아니 그들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싫다면 더욱더… 그들이 길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돈과 시간을 쓰고 몸까지 축내가면서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을 방해하면 안 된다. 길고양이를 위해 집을 만들어 핫팩을 넣어주고 밥까지 챙겨주는 캣맘이 마음 놓고 길고양이를 돌볼수록 당신이 싫어하는 길고양이를 건물 안에서 볼 수 있는 확률이 낮아지고 피해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안내문을 뽑아서 코팅해서 문에 붙여 놓은 것보다는 그것이 훨씬 확실한 방법이다.
끝으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저 아이가 날 기억하고 오늘 만난 그 자리에서 날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겨울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글·사진 김하연 길고양이 사진가
건물 밖으로 나와 밥을 달라는 듯 울며 보채서 사료를 꺼내줬더니 그릇에 고개를 박고 허기를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