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베이 시립동물원의 마스코트인 코끼리 ‘임왕’의 실제 크기 전시물. 대만에서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임왕은 야생 코끼리의 수명인 70살을 훌쩍 넘는 86살의 나이로 2003년 숨을 거뒀다.
지난 6월13일 대만 타이베이 시립동물원에 견학 온 보니유치원의 원생들.
동물원의 살아남기 ② 교육하는 동물원
생명이 있는 동물을 가두어 관람을 한다는 점에서 동물원 존폐 논란의 역사는 오래됐다. 동물원을 당장 없앨 수는 없다. 여기서 동물원의 역할과 책임을 따지는 질문이 나온다. 첫번째는 교육이다. 선진 동물원은 동물이 살아가는 모습과 환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동물과 인간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동물이 인간과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그 둘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반면, 국내 동물원은 직업 체험이나 동물 지식 전달에만 그치는 경우가 많다. 동물교육 철학을 담은 국내 동물원을 소개하는 날을 기다려본다.
지난 6월13일 찾은 대만의 타이베이 시립동물원. 가방을 메고 곰 인형 탈을 쓴 이가 수풀이 사라진 곳에서 두리번거린다. 이내 당황한 기색의 대만 흑곰은 “집이 보이지 않아”라며 울먹인다. 대만 흑곰이 살던 집터엔 대형 호텔이 들어섰다. 호텔 근처엔 도로가 길게 뻗어 있다. 도로 옆으로는 가게와 집들이 일렬로 들어섰다. 집이 사라져 슬퍼하던 대만 흑곰은 이내 가방을 고쳐 메고 사람을 피해 더 깊은 숲속으로 사라진다. 숲이 사라져 멸종위기에 내몰린 대만 흑곰 보호를 위해 타이베이 시립동물원에서 만든 동물 인형극 <우리 집이 보이지 않아>의 내용이다.
겨울잠을 안 자고 둥지를 만들어 사는 유일한 곰인 대만 흑곰은 세계자연보전연맹이 분류한 멸종위기종이다. 대만 정부는 대만 흑곰을 1989년부터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이 동물인형극은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며 끝난다. “대만 흑곰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의 서식지 보존 토론이 이어진다.
타이베이 시립동물원은 사람과 동물 그리고 환경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교육 프로그램이 아시아에서 가장 우수한 곳으로 꼽힌다. 16만5000㎡ 면적의 이 동물원엔 국제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390여종의 동물 2300여마리가 살고 있다. 단순 전시에서 그치지 않고 동물 보존, 환경 교육, 동물·환경 연구 등을 포괄하는 공공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은 학생, 성인, 공무원용 등으로 나뉜다. 어린이와 학생이 대상인 정기교육 프로그램엔 동물 인형극을 비롯해 수생태계 오염을 막기 위한 물 사용량 줄이기, 곤충과 파충류·양서류 탐구하기, 사육사와 함께 동물 습성 알아보기 등 강의가 있다.
학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된 테마체험 프로그램은 인기가 높다. 동물원은 지난해 교육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98%가 만족했다고 밝혔다. 반딧불이 서식지 생태 탐구, 동물 사육사 체험, 동물원 수의사 체험, 곰 탐구 체험 등이 있다. 우이신 동물원 교육부문 부연구원은 “참여하는 학생 수가 해마다 10만여명이다. 학생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동물-환경의 상관관계를 배운다. 타이베이시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은 반드시 동물원에서 동물 생태습성과 환경 교육 등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인용 집중 수업도 있다. 생물 다양성의 가치, 중요성, 위협 등을 파악하는 ‘동물 다양성’, 서식지 관리를 통한 환경 교육인 ‘서식지 보호’, 동물원의 동물보호 구실과 야생동물 생명의 중요성을 배우는 ‘동물 환경교육’ 등이다. 각 교육 프로그램은 이론수업, 특강, 실외탐구 순서로 진행된다.
우이신 부연구원은 “대만 공무원은 1년에 4시간 동안 전문교육 프로그램을 받아야 한다. 동물보호단체 등이 체계적인 환경교육의 필요성을 입법원에 제안했고, 입법원은 2011년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2012년부터 공무원들은 정부 인증을 받은 우리 동물원의 전문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이신 타이베이 시립동물원 교육부문 부연구원이 인간·동물·환경 교육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6월13일 대만 학생들이 타이베이 시립동물원에 들어가고 있다.
동물원은 또 벽지 학교나 장애인단체를 찾아가 사람·동물·환경을 교육하는 ‘행동 동물원’과 소아병동의 환자 등 소외계층을 동물원에 초대하는 특별 프로그램도 꾸리고 있다. 대만 정부는 이 동물원을 타이베이 시교육청 산하 공공 사회교육기관으로 지정했다. 동물원을 공공 교육기관으로 지정한 행정당국과 이를 통해 사람·동물·환경 교육에 나서는 동물원의 연구 노력이 맞물린 결과, 이 동물원은 아시아 최고 수준의 교육 프로그램과 인프라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동물원에 대한 날선 비판도 있다. “동물원의 시설, 면적, 전문인력 등을 고려할 때 타이베이 시립동물원은 비교적 양호하게 동물을 보살피고 있다. 하지만 야생의 자연환경과 비교할 수는 없다. 동물원에서 만든 교육 프로그램은 다양하지만, 동물복지 측면에선 내용이 제한적이다. 결국 동물원은 사라져야 한다.” 코니 장 대만 동물학대방지협회(SPCA) 사무처장의 말이다.
동물원 지하 1층에 있는 공룡박물관과 역사관에는 4~5m 높이 코끼리 전시물이 있다. 이 동물원의 마스코트인 코끼리 ‘임왕’(林王)이다. 2차 대전 당시 일제 군대에서 대포 등을 끌던 임왕은 군수품 수송, 건설현장 자재 운송 등을 하다 우여곡절 끝에 이 동물원에서 살게 됐다. 야생 코끼리 수명이 70살을 채 넘지 못하는데도 임왕은 86살(2003년)까지 살았다. 임왕은 대만 국민의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동물원은 임왕을 기리고 대만의 역사를 알리는 목적에서 임왕의 생전 모습을 본떠 만든 전시물을 설치했다.
대만 타이베이 시립동물원 교육센터 1층에는 동물들의 박제가 전시돼 있다.
대만 타이베이 시립동물원 교육센터에 있는 물고기 생태관.
지난 6월13일 대만 타이베이 시립동물원의 자이언트 판다관을 보러 온 신주시의 양광초등학교 학생들.
대만 타이베이 시립동물원의 양서류·파충류관에 있는 ‘사람과 바다거북의 생태교육’ 안내글.
지난 6월13일 대만 타이베이 시립동물원의 아프리카 동물구역에 있는 코뿔소가 사료를 먹고 있다.
기온 36도에 습도 90%에 이르는 6월 무더위에도 동물원은 유치원·초·중학생들로 붐볐다. 신베이시에 있는 ‘보니유치원’ 원생 40여명을 데리고 동물원 견학을 온 정자시(35) 보육교사는 “해마다 두 차례 동물원 나들이를 한다. 아이들은 동물원에서 사람과 동물이 교류하는 방법을 배운다.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교육과정”이라고 말했다.
아이와 함께 동물원에 온 부모들도 눈에 띄었다. 네 살짜리 딸의 손을 잡은 천쉬례(29·타이베이시)는 “다달이 한 번은 동물원을 찾는다. 주말엔 동물원이 관람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어 평일에 휴가를 내어 아내와 함께 왔다. 딸이 직접 눈으로 동물을 보면, 정서 발달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타이베이/글·사진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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