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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학생 절반 이상, 동물원에서 수업한다

등록 2017-10-09 11:55수정 2017-10-09 16:55

58만명 중 32만명이 동물원서 수업
“동물보호 인식은 물론 수학, 영어 등도

싱가포르 동물원의 기린 우리 앞에서 방문객들이 기린을 관찰하고 있다. 기린과 사람 사이에 쇠창살 등 인공적인 구조물 없이 식물로 된 낮은 울타리만 있다.
싱가포르 동물원의 기린 우리 앞에서 방문객들이 기린을 관찰하고 있다. 기린과 사람 사이에 쇠창살 등 인공적인 구조물 없이 식물로 된 낮은 울타리만 있다.

동물원의 살아남기 ② 교육하는 동물원

생명이 있는 동물을 가두어 관람한다는 점에서 동물원 존폐 논란의 역사는 오래됐다. 동물원을 당장 없앨 수는 없다. 여기서 동물원의 역할과 책임을 따지는 질문이 나온다. 첫 번째는 교육이다. 선진 동물원은 동물이 살아가는 모습과 환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동물과 인간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 동물이 인간과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그 둘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반면, 국내 동물원은 직업 체험이나 동물 지식 전달에만 그치는 경우가 많다. 동물교육 철학을 담은 국내 동물원을 소개하는 날을 기다려본다.

싱가포르 동물원에서 한 어린이가 신기한 듯 얼룩말을 관찰하고 있다. 얼룩말과 사람 사이에 쇠창살 등 인공적인 구조물 없이 식물로 된 낮은 울타리만 있다.
싱가포르 동물원에서 한 어린이가 신기한 듯 얼룩말을 관찰하고 있다. 얼룩말과 사람 사이에 쇠창살 등 인공적인 구조물 없이 식물로 된 낮은 울타리만 있다.
지난 5월 말 찾은 싱가포르. 이곳에서 5년째 직장생활을 하는 이승언(25)씨는 “이곳 동물원은 동물교육에 무관심한 한국 동물원과는 위상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생태동물원’으로 유명한 싱가포르 동물원은 1973년 개장했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170만명이 찾는 명소다.

전문가들은 싱가포르 동물원이 학교와 연계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점을 주목한다. 싱가포르 동물원은 교육프로그램 개발 단계에서부터 싱가포르 교육당국과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한다. 이를 위해 해마다 각 학교 교장을 동물원으로 초대해 동물원이 준비한 교육 프로그램을 설명한다.

교장에 이어 교육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는 교사 연수도 진행한다. 연수를 마친 교사는 학교에 가서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연수 때 배운 내용을 가르치고, 학생들은 동물원을 방문해 교사에게 배운 내용을 직접 체험하며 학습하는 식이다. 메이 록 싱가포르 동물원 교육총괄담당은 “우리는 교사와 교장 등 교육 관계자를 만나면 항상 ‘우리 동물원에 원하는 것이 뭡니까?’라고 묻는다. 대부분은 종 보존을 위한 동물원의 필요성이나 지식 등 기본적으로 동물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찾지만 때론 중국어와 음악 등 일반 교과목을 배우고 싶다는 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싱가포르 동물원의 인기스타 ‘판다’를 이용한 중국어 교육 프로그램이다. 판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중국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식으로 중국어와 숫자를 공부한다. 메이 록 총괄담당은 “동물원에서 어린아이들이 판다를 만나 즐겁게 지내고 있을 때 슬쩍 공부 요소를 넣으면 어려운 공부도 즐겁게 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싱가포르 동물원 긴팔원숭이 우리 앞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긴팔원숭이 우리가 쇠창살 등 인공적인 구조물 없이 나무와 풀 등 자연 친화적인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싱가포르 동물원 긴팔원숭이 우리 앞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긴팔원숭이 우리가 쇠창살 등 인공적인 구조물 없이 나무와 풀 등 자연 친화적인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싱가포르 동물원의 코뿔소 우리 모습. 코뿔소와 사람 사이에 쇠창살 등 인공적인 구조물 없이 식물로 된 낮은 울타리만 있다.
싱가포르 동물원의 코뿔소 우리 모습. 코뿔소와 사람 사이에 쇠창살 등 인공적인 구조물 없이 식물로 된 낮은 울타리만 있다.
방문객들의 머리 위를 자유롭게 오가는 싱가포르 동물원의 원숭이들.
방문객들의 머리 위를 자유롭게 오가는 싱가포르 동물원의 원숭이들.
싱가포르 바틀리 중학교에 다니는 누 아티나 룡 알라피채(14)는 “그냥 동물원 관람만 한 것이 아니라 선생님과 함께 동물 먹이를 만들고 직접 만든 먹이를 주는 등 생생한 체험을 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동물원은 나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갓 태어난 새끼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서부터 동물 먹이, 동물의 피부, 가축, 곤충, 코끼리, 영장류 등 20여개 이상이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가방과 옷 등을 만들기 위해 도축되는 동물을 배우고 동물 보호 방법을 함께 고민한다. 조랑말과 염소 등 가축화된 동물을 만나 인간이 야생동물을 가축으로 만든 방법을 배우는 프로그램도 있다. 가축한테서 얻는 우유와 치즈, 솜털 등에 대한 토론 수업도 벌인다.

열대우림 생태계를 모방한 ‘파괴되기 쉬운 숲’을 방문하기도 한다. 이곳에선 열대우림의 다양한 환경을 탐험할 수 있다. 나무늘보와 박쥐, 타란툴라 거미, 달팽이 등을 만나며 열대우림이 왜 인간의 생존에도 중요한지 배운다. 또 밀렵과 불법 야생동물 밀거래 등 인간의 행위가 야생동물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토론하는 시간도 있다.

망토원숭이 우리에선 무리생활에 대해 배운다. 50마리 이상으로 꾸려진 원숭이 무리가 서로 털을 골라주는 모습과 먹이를 서로 먹으려고 다투는 장면, 교미하는 것을 관찰하며 설명을 듣는다. 네발로 걷고 긁고, 털을 고르는 등 원숭이의 행동을 따라 해보는 체험도 한다. 싱가포르 동물원은 원숭이들의 서열 다툼과 항복, 싸움 뒤 털 고르기를 통해 화해하는 모습 등을 관찰하며 그들이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는지 살펴보는 것 자체가 학생들의 사회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설명과 관찰 시간이 끝나면 ‘사회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을 두고 토론도 한다.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해 조랑말 키 재기 등의 활동을 하며 산술 능력을 키우고 몸을 쓰는 프로그램은 효과가 커 보였다. 코끼리 두개골과 어금니, 상아를 만지며 비교를 통해 크기와 무게에 대해 배우기도 한다. 다리를 벌리고 머리를 숙여 물을 마시는 기린의 움직임을 따라 하는 놀이도 한다.

동물원이 학교를 방문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동물원 방문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동물원이 학교에 간다’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동물원 교육담당자가 동물원의 동물을 학교로 가져가 토끼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 필요한 책임감과 멸종위기 동식물 보호 등에 대해 교육한다. 이런 식으로 싱가포르 동물원이 운영하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은 한 해 평균 32만명이다. 이는 싱가포르 전체 학생 수(58만명)의 절반이 넘는 55.1%에 이른다.

싱가포르 동물원 동물병원에서 교육담당자가 동물이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백신을 개발하는 등 동물원의 노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싱가포르 동물원 동물병원에서 교육담당자가 동물이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백신을 개발하는 등 동물원의 노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싱가포르 동물원의 교육담당자가 하이에나 두개골을 들어 보이며 초식과 육식동물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싱가포르 동물원의 교육담당자가 하이에나 두개골을 들어 보이며 초식과 육식동물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싱가포르 동물원에서 방문객들이 길 옆 나무 위를 자유롭게 오가는 목화머리타마린 원숭이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싱가포르 동물원에서 방문객들이 길 옆 나무 위를 자유롭게 오가는 목화머리타마린 원숭이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싱가포르 동물원 정문 모습. 많은 관광객들이 동물원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싱가포르 동물원 정문 모습. 많은 관광객들이 동물원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싱가포르 동물원의 왈라비. 캥거루와 비슷하게 생긴 왈라비가 낮은 나무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다.
싱가포르 동물원의 왈라비. 캥거루와 비슷하게 생긴 왈라비가 낮은 나무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다.

학생들이 참여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동물원 재정에도 큰 도움이 된다. 싱가포르 교육부는 해마다 동물원이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각 학교로 안내한다. 학교에선 원하는 프로그램을 골라 수업을 진행한다. 학교가 동물원에 지불하는 입장료와 교육 프로그램 운영비 등은 교육부가 지원한다. 정부가 학교를 통해 동물원에 간접적으로 예산을 지원하는 셈이다.

메이 록 총괄담당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수익금은 멸종위기종 보존과 더 나은 거주환경 등 동물복지에 재투자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동물원이 교육부에서 간접적으로 예산을 지원받다 보니 아무래도 동물원의 공공성에 대해 좀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싱가포르/글·사진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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