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점’ 정간…춘절 특집 심의 또 심의…
지침 목빼는 생각없는 인민 만들건가?
여러 사람의 입은 결코 막을 수 없다
언론통제 부패 낳고 중국사회 퇴보시켜
“인민 위한다면 전면적인 자유를” 일갈
지침 목빼는 생각없는 인민 만들건가?
여러 사람의 입은 결코 막을 수 없다
언론통제 부패 낳고 중국사회 퇴보시켜
“인민 위한다면 전면적인 자유를” 일갈
현장속 현장/‘중국 언론봉쇄 비판’ 리푸 전 신화사 부사장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흔을 바라보는 고령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쩌렁쩌렁한 전형적인 중국 호남의 목소리였다. “<빙점> 정간사태를 포함해 최근 중국의 언론 상황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래? 그럼 내일 아침 일찍 와. 나도 바쁘니까.” 24년 전 퇴직한 여든여덟의 노인네가 무슨 일로 그리 바쁜지는 그를 만난 뒤에야 알게 됐다.
중국 언론계에서 존경받는 원로인 리푸(88) 전 신화사 부사장은 신화통신사의 고위직들이 거주하는 ‘서취’(주거지역)인 베이징 터우파후퉁 58번지에 살고 있었다. 지난달 23일 오전 약속한 시간에 그의 집을 찾아갔을 때 리는 이미 이웃에 사는 퇴직한 신화사·인민일보 기자 등 벗들과 차를 마시며 방담하는 중요한 하루 일과를 시작한 상태였다.
얼굴 가득한 검버섯이 세월의 바람서리를, 복숭아 빛 붉은 혈색이 건강 체질임을 말해주는 리는 인터뷰가 시작되자 또렷하고 명쾌한 어조로 중국 당국의 언론 봉쇄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중국공산청년단(공청단) 중앙기관지 <중국청년보>의 주말 부록 <빙점>이 다음달 1일 복간될 예정이나, 리다퉁 편집장과 루웨강 부편집장은 면직당한 뒤 <중국청년보>의 ‘연구실’로 보내질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줬다. 리는 “‘연구실’이란 ‘양로원’같은 곳”이라며 “이런 부당한 처리로 이 일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중국 언론상황을 가늠할 수 있다.
다른 의견 다투는 시대 맞이해야
-중국 언론계의 원로로서 <빙점>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간단하다. 중국에 언론자유가 없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빙점>을 정간시킨 건 아주 어리석은 처사다. 당과 정부가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면 마땅히 당장 언론자유를 실현해야 한다. 언론자유가 있어야 인민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만약 언론매체에 발표된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해 반박을 하고 논쟁을 벌이면 된다. 어떤 건 허가하고 어떤 건 허가하지 않는 건 매우 자의적인 것이다. 이런 논쟁과 토론을 통해 되레 인민의 수준이 높아지고 사상이 발전할 수 있으며 민족의 단결에도 도움이 된다. 중국의 옛말에 ‘여러 사람의 입은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중국 당국은 지금 언론자유를 실현할 경우 중국 사회의 안정을 해칠 것으로 보고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되레 관료들의 부패 등 사회 안정을 해치는 요인을 제거하는 작용을 할 것이다. 중국의 부패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매일 줄줄이 엮인 부패 사건들이 터져나오고 있음에도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있다. 매체에서 부패의 진상을 제대로 파헤친다면 이렇게 심각한 부패를 예방하고 감시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당국은 또 언론이 개방될 경우 부정적인 보도가 국가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 한다. =거꾸로 언론 통제가 공산당의 이미지를 해친다. 세계의 조류는 민주주의와 개방을 향해 가고 있다. 이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자유가 없는 국가는 오늘날 설 땅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세계란 본디 다원적이고 다채로운 것이다. 역사와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세계는 각종 의견으로 충만해 있다. 이런 다양한 의견을 막는다는 건 현실을 거스른다는 뜻이다. 어떤 의견이든지 발표하게 하면 큰 문제가 안 된다. 발표하고 지나가면 그뿐이다. 그러나 그걸 억지로 막으려 들 때 오히려 문제가 생긴다. -일반 서민은 볼 수 없고 중국 고위층에만 보고되는 <내부참고> 등 중국 언론의 이중구조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내가 볼 때 오늘날 <내부참고>의 내용은 모두 공개해도 아무 문제가 안 된다. 대단한 것도 없다. 음모 꾸미는 내용이 아닌데 왜 공개를 못하나. 물론 어떤 국가든지 공개할 수 없는 기밀은 있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은 사안, 몇 가지 방안을 두고 고르고 있는 문제, 당장 밝힐 경우 교섭 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 등은 당연히 보안 유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아닌 중국 내 사건 사고 등은 당장 모두 공개해도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당국은 지난해 ‘자연재해 피해실태 공개’를 ‘기밀’에서 해제하면서, 언론 전면 해금은 서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언론이 해금되면 인민도 그에 적응한다. 예를 들어 유럽에 처음 갔을 때 반라에 가까운 여성들의 사진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지만 자꾸 대하니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마오쩌둥 시대의 유산이 인민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사람들은 두 가지 엇갈린 주장을 들으면 스스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당황한다. 상부에서 어떤 ‘지침’이 내려오길 기다린다. 얼마나 수동적인가. 이런 경우 나더러 “어떤 쪽 얘기를 들어야 하느냐”고 물어오는 이가 있으면 난 “머리는 장식품이냐, 뒀다가 뭣에 쓰려고 하느냐, 스스로 생각해서 판단해 보라”고 핀잔을 준다. 인민들이 이렇게 스스로 생각하고 논쟁하면서 사고의 수준이 높아지고, 선입견과 편견이 제거될 수 있으며, 대화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개척할 수 있다. 지금 내가 당신과 인터뷰하면서도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랐다. 대화의 생산성이란 이런 것이다. 언론 통제 사회에서는 이런 생산적인 대화가 가능하지 않다. 언론통제야말로 중국 사회를 뒤떨어지도록 만드는 요인이다. 중국엔 뉴스가 없다, 다 뻔한소리 -오늘날 중국이 언론자유를 실현하는 데 어떤 곤란한 점은 없나. =내가 볼 때 전혀 없다. 중국의 당과 국가 지도자들은 전면적인 언론자유의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하나의 목소리만 존재하던 시대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다투는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예전에 중선부에서 일하신 적이 있는데, 오늘날의 중선부와 비교해보면 어떤가. =중선부 선전처 부처장을 한 적이 있는데, 우리 사무실에 6~7명이 있었고 하는 일도 간단했다. 당시 중선부 전체 인원이 100명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200~300여명에 이른다. 선전처는 몇 개의 처를 거느린 선전국으로 승격하는 등 조직이 훨씬 방대해졌다. -오늘날 중선부의 언론 통제에 대해 어떻게 보나. =헌법과 법률에 따르면 중선부는 언론을 통제할 아무런 권한도 없다. 매체의 보도 내용을 심의할 아무런 권한도 없고 <빙점>을 정간시킬 권한 또한 없다. <빙점> 정간 결정은 그 자체가 잘못된 결정일 뿐만 아니라, 중선부가 있지도 않은 권한을 가지고 멋대로 횡포를 부린 것이다. 중국 정부에서 언론매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곳은 신문출판국이다. 국가기관이 엄연히 있는데 공산당이나 공청단의 선전부가 나서서 언론매체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빙점> 정간에 항의한 원로들의 ‘연합성명’이 중국 내에서 얼마나 알려졌나. =미국·유럽의 주요 매체는 다 보도했고 홍콩과 한국·일본서도 보도했다. 유독 중국 대륙의 인민들만 모른다. -외국 매체와 인터뷰하는 데 제약은 없나. =전혀 신경 안 쓴다. 후진타오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 얼마든지 외국 매체에 대고 할 수 있지 않나. 나 또한 마찬가지다. 후진타오와 내가 뭐가 다른가. 그가 발언할 권리가 있다면 나 또한 똑같은 발언권이 있다. -후 주석이 원로들의 ‘연합성명’을 읽었을까. =아마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도 이 성명을 한 부 보내 그가 읽고 중국 언론 통제의 실정을 정확하게 알길 희망한다. -언론매체 이외에도 제약이 있나.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가령 춘절(설) 저녁 특집 프로그램의 경우 아무도 안 맡으려 한다는 얘길 들었다. 심의 통과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통과가 안 되면 다시 만들어야 하고 또 심의에 걸리면 또 다시 만든다. 몇 번 이런 과정을 거치면 진이 빠져 아무도 맡고 싶지 않아진다. 그거 감시해서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언론 통제는 중국 사회의 진보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런 상황에선 중국 사회가 후진성을 면할 수 없다. -어떤 매체를 보는가. =신문 전혀 안 읽는다. 뉴스가 없고 온통 뻔한 얘기들뿐이다. 그래서 중국에는 이런 얘기가 있다. “신문은 제목만 읽으면 되고 책은 표지만 보면 그만이다.” 내용이 없다는 얘기다. 새로운 게 없고 늘 그 밥에 그 나물이다. -그러면 어떻게 정보나 소식을 얻는가. =입에서 입으로, 전화에서 전화로 전해진다. 가령 <빙점> 정간 조처가 났을 때, 중국 언론은 일제히 침묵했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았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 인터넷은 기동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당국이 도저히 막을 수 없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쓴소리 마다않는 공산당 원로 1918년 후난성 출생. 1938년 공산당에 입당한 뒤 항일전쟁에 참가했다. 1940년 항전시기 임시수도인 충칭에서 중국공산당(중공)이 발행하던 <신화일보>의 기자로 입사해 항일전쟁 기간 동안 류보청과 덩샤오핑이 지휘하던 ‘류덩대군’의 종군기자로 일했다. 1952년 신화사를 떠나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선전처 부처장, 베이징대학 정치학과 주임, 중공 중앙 중남국 정책연구실 주임 등 당의 일을 맡아보다 1972년 20년만에 신화사로 복귀해 국내부 주임과 부사장을 역임했다. 중남국 정책연구실 주임 시절 문화대혁명(1966~1976)을 만나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당권파’로 찍혀 비판을 받았으며, 1년간 가택에 연금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책연구실 구성원들이 모두 지식분자들이어서 고깔모자를 쓰고 목에 ‘죄명’이 쓰인 철판을 거는 ‘험한 꼴’은 당하지 않았다.” 1982년 정년퇴임한 이후에는 당의 원로로서 정치적 고비마다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해 1월 자오쯔양 전 총서기가 사망했을 때는 당의 원로들과 함께 자오쯔양의 전면 재평가를 촉구하기도 했다.
-중국 언론계의 원로로서 <빙점>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간단하다. 중국에 언론자유가 없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빙점>을 정간시킨 건 아주 어리석은 처사다. 당과 정부가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면 마땅히 당장 언론자유를 실현해야 한다. 언론자유가 있어야 인민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만약 언론매체에 발표된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해 반박을 하고 논쟁을 벌이면 된다. 어떤 건 허가하고 어떤 건 허가하지 않는 건 매우 자의적인 것이다. 이런 논쟁과 토론을 통해 되레 인민의 수준이 높아지고 사상이 발전할 수 있으며 민족의 단결에도 도움이 된다. 중국의 옛말에 ‘여러 사람의 입은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중국 당국은 지금 언론자유를 실현할 경우 중국 사회의 안정을 해칠 것으로 보고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되레 관료들의 부패 등 사회 안정을 해치는 요인을 제거하는 작용을 할 것이다. 중국의 부패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매일 줄줄이 엮인 부패 사건들이 터져나오고 있음에도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있다. 매체에서 부패의 진상을 제대로 파헤친다면 이렇게 심각한 부패를 예방하고 감시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당국은 또 언론이 개방될 경우 부정적인 보도가 국가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 한다. =거꾸로 언론 통제가 공산당의 이미지를 해친다. 세계의 조류는 민주주의와 개방을 향해 가고 있다. 이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자유가 없는 국가는 오늘날 설 땅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세계란 본디 다원적이고 다채로운 것이다. 역사와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세계는 각종 의견으로 충만해 있다. 이런 다양한 의견을 막는다는 건 현실을 거스른다는 뜻이다. 어떤 의견이든지 발표하게 하면 큰 문제가 안 된다. 발표하고 지나가면 그뿐이다. 그러나 그걸 억지로 막으려 들 때 오히려 문제가 생긴다. -일반 서민은 볼 수 없고 중국 고위층에만 보고되는 <내부참고> 등 중국 언론의 이중구조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내가 볼 때 오늘날 <내부참고>의 내용은 모두 공개해도 아무 문제가 안 된다. 대단한 것도 없다. 음모 꾸미는 내용이 아닌데 왜 공개를 못하나. 물론 어떤 국가든지 공개할 수 없는 기밀은 있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은 사안, 몇 가지 방안을 두고 고르고 있는 문제, 당장 밝힐 경우 교섭 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 등은 당연히 보안 유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아닌 중국 내 사건 사고 등은 당장 모두 공개해도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당국은 지난해 ‘자연재해 피해실태 공개’를 ‘기밀’에서 해제하면서, 언론 전면 해금은 서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언론이 해금되면 인민도 그에 적응한다. 예를 들어 유럽에 처음 갔을 때 반라에 가까운 여성들의 사진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지만 자꾸 대하니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마오쩌둥 시대의 유산이 인민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사람들은 두 가지 엇갈린 주장을 들으면 스스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당황한다. 상부에서 어떤 ‘지침’이 내려오길 기다린다. 얼마나 수동적인가. 이런 경우 나더러 “어떤 쪽 얘기를 들어야 하느냐”고 물어오는 이가 있으면 난 “머리는 장식품이냐, 뒀다가 뭣에 쓰려고 하느냐, 스스로 생각해서 판단해 보라”고 핀잔을 준다. 인민들이 이렇게 스스로 생각하고 논쟁하면서 사고의 수준이 높아지고, 선입견과 편견이 제거될 수 있으며, 대화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개척할 수 있다. 지금 내가 당신과 인터뷰하면서도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랐다. 대화의 생산성이란 이런 것이다. 언론 통제 사회에서는 이런 생산적인 대화가 가능하지 않다. 언론통제야말로 중국 사회를 뒤떨어지도록 만드는 요인이다. 중국엔 뉴스가 없다, 다 뻔한소리 -오늘날 중국이 언론자유를 실현하는 데 어떤 곤란한 점은 없나. =내가 볼 때 전혀 없다. 중국의 당과 국가 지도자들은 전면적인 언론자유의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하나의 목소리만 존재하던 시대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다투는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예전에 중선부에서 일하신 적이 있는데, 오늘날의 중선부와 비교해보면 어떤가. =중선부 선전처 부처장을 한 적이 있는데, 우리 사무실에 6~7명이 있었고 하는 일도 간단했다. 당시 중선부 전체 인원이 100명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200~300여명에 이른다. 선전처는 몇 개의 처를 거느린 선전국으로 승격하는 등 조직이 훨씬 방대해졌다. -오늘날 중선부의 언론 통제에 대해 어떻게 보나. =헌법과 법률에 따르면 중선부는 언론을 통제할 아무런 권한도 없다. 매체의 보도 내용을 심의할 아무런 권한도 없고 <빙점>을 정간시킬 권한 또한 없다. <빙점> 정간 결정은 그 자체가 잘못된 결정일 뿐만 아니라, 중선부가 있지도 않은 권한을 가지고 멋대로 횡포를 부린 것이다. 중국 정부에서 언론매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곳은 신문출판국이다. 국가기관이 엄연히 있는데 공산당이나 공청단의 선전부가 나서서 언론매체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빙점> 정간에 항의한 원로들의 ‘연합성명’이 중국 내에서 얼마나 알려졌나. =미국·유럽의 주요 매체는 다 보도했고 홍콩과 한국·일본서도 보도했다. 유독 중국 대륙의 인민들만 모른다. -외국 매체와 인터뷰하는 데 제약은 없나. =전혀 신경 안 쓴다. 후진타오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 얼마든지 외국 매체에 대고 할 수 있지 않나. 나 또한 마찬가지다. 후진타오와 내가 뭐가 다른가. 그가 발언할 권리가 있다면 나 또한 똑같은 발언권이 있다. -후 주석이 원로들의 ‘연합성명’을 읽었을까. =아마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도 이 성명을 한 부 보내 그가 읽고 중국 언론 통제의 실정을 정확하게 알길 희망한다. -언론매체 이외에도 제약이 있나.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가령 춘절(설) 저녁 특집 프로그램의 경우 아무도 안 맡으려 한다는 얘길 들었다. 심의 통과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통과가 안 되면 다시 만들어야 하고 또 심의에 걸리면 또 다시 만든다. 몇 번 이런 과정을 거치면 진이 빠져 아무도 맡고 싶지 않아진다. 그거 감시해서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언론 통제는 중국 사회의 진보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런 상황에선 중국 사회가 후진성을 면할 수 없다. -어떤 매체를 보는가. =신문 전혀 안 읽는다. 뉴스가 없고 온통 뻔한 얘기들뿐이다. 그래서 중국에는 이런 얘기가 있다. “신문은 제목만 읽으면 되고 책은 표지만 보면 그만이다.” 내용이 없다는 얘기다. 새로운 게 없고 늘 그 밥에 그 나물이다. -그러면 어떻게 정보나 소식을 얻는가. =입에서 입으로, 전화에서 전화로 전해진다. 가령 <빙점> 정간 조처가 났을 때, 중국 언론은 일제히 침묵했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았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 인터넷은 기동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당국이 도저히 막을 수 없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쓴소리 마다않는 공산당 원로 1918년 후난성 출생. 1938년 공산당에 입당한 뒤 항일전쟁에 참가했다. 1940년 항전시기 임시수도인 충칭에서 중국공산당(중공)이 발행하던 <신화일보>의 기자로 입사해 항일전쟁 기간 동안 류보청과 덩샤오핑이 지휘하던 ‘류덩대군’의 종군기자로 일했다. 1952년 신화사를 떠나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선전처 부처장, 베이징대학 정치학과 주임, 중공 중앙 중남국 정책연구실 주임 등 당의 일을 맡아보다 1972년 20년만에 신화사로 복귀해 국내부 주임과 부사장을 역임했다. 중남국 정책연구실 주임 시절 문화대혁명(1966~1976)을 만나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당권파’로 찍혀 비판을 받았으며, 1년간 가택에 연금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책연구실 구성원들이 모두 지식분자들이어서 고깔모자를 쓰고 목에 ‘죄명’이 쓰인 철판을 거는 ‘험한 꼴’은 당하지 않았다.” 1982년 정년퇴임한 이후에는 당의 원로로서 정치적 고비마다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해 1월 자오쯔양 전 총서기가 사망했을 때는 당의 원로들과 함께 자오쯔양의 전면 재평가를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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