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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살기 어려워도 사회주의는 포기 못해”

등록 2006-01-26 17:19수정 2006-02-06 15:27

쿠바 관타나모시 외곽의 아침. 자전거를 탄 출근길 뒤의 벽에 쿠바 국가와 ‘리볼루시옹(혁명)’이라는 구호가 새겨져 있다.
쿠바 관타나모시 외곽의 아침. 자전거를 탄 출근길 뒤의 벽에 쿠바 국가와 ‘리볼루시옹(혁명)’이라는 구호가 새겨져 있다.
지난해 임금인상 15% GDP 성장률 11.8%
수치만 보면 천국의 문턱인데
속은 암시장·도둑질 판치고
‘이중경제’로 빈부차 싹트지만…
쿠바시민 “사회주의는 자부심 원천”
현장속 현장ㅣ유재현의 쿠바 탐방기/① 아바나, 그 빛과 어둠

몇 남지않은 사회주의 국가 가운데 하나인 쿠바. 미국의 이웃나라로 오랜 봉쇄정책에 시달리면서도 독특한 경제체제와 문화를 발전시켜온 이 나라의 농업혁명 등 최근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지난 해 2월에 이어 12월 다시 쿠바를 찾아 3주일간 전국을 탐방한 소설가 유재현씨가 1990년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전망을 보여주는 쿠바 사회주의 체제의 실상을 현장체험을 토대로 4차례에 걸쳐 전한다.

지난 해 유독 심했던 허리케인 때문이었을까, 관광성수기를 앞둔 지난해 12월 아바나는 새 단장 마무리가 한창이었다. 8㎞에 이르는 말레콘 해변도로는 새로 깐 아스팔트의 검은빛으로 눈이 부셨다. 도로와 더불어 아바나의 ‘무너져 내리는 고풍스러움’을 장식했던 식민지 시대의 건물들 또한 말레콘 주변에서는 최후를 맞고 있었다. 센트로 아바나의 중심인 프라도(Prado)광장 주변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관광산업에의 재투자 성격이 강하지만 이만한 규모와 질의 도시정비사업은 1959년 혁명 이후 최초로 평가되고 있다.

지옥과 천국

도로를 깔고 건물을 보수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쿠바정부가 말레콘의 유서 깊은 건물들과 해변도로에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은 그보다 다급한 일들에는 한시름 놓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쿠바정부는 1992년에 선포했던 비상시기(El Periodo Especial)의 극복과 종료를 선언했다. 앞선 2004년에는 최저임금과 최저연금의 대폭 인상이 있었고 지난 해 또한 15%의 임금인상을 단행했다. 식량배급도 넉넉해진 편이고 전기밥솥, 전기렌지와 같은 특별배급품목도 지급되었다. 전력사정도 여유로워진 것을 의미한다. 통계수치들은 모두 기록적이다. 1990년 7.5%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은 2005년 추정치 1.9%를 기록했다. 낮은 쪽으로 세계10위권에 근접했다. 2005년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은 11.8%로 혁명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한때 1달러당 190페소까지 치솟았던 환율은 24-25페소로 떨어졌다. 1989년 소련과 동유럽권의 몰락 후 식량자급률 40%대의 알몸으로 카리브해에 내동댕이쳐진 90년대의 벽두와 비교한다면 오늘 쿠바가 이른 고지는 천국의 문턱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제 쿠바는 살만 한 나라인가? 지난 2월에 이어 12월 다시 호세 마르띠 공항에 발을 딛기 전 뒤적였던 보도와 자료들의 평가는 여전히 인색했다. 세계최강대국과 맞서 오로지 막가파정신에만 충만한 늙은 지도자에 의해 고집스러운 냉전을 치르고 있는 나라, 진즉 망했어야 할 시대착오적 사회주의국가였다. 평균임금 15달러 전후로 기아와 물자난에 허덕이고 의사와 박사가 직장을 때려치운 후 가정부나 호텔잡역부를 자청하는 나라. 국영상점의 물건을 빼돌려 암시장에 내놓는 인민이 득시글거리는 나라. 부정과 부패의 나라. 쿠바는 그런 나라였다. 결국은 중국식 시장경제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예언도 심심치 않았다.

나는 그런 최신의 지식들을 머리에 담고 아바나로 향했다. 유난히 암시장에 주의를 기울였던 내 눈에도 아바나의 암시장은 무아지경을 탐냈다. 국영배급소(Bodega)의 창고에 있어야 할 분유와 우유, 달걀들이 고단하게도 길바닥 신세를 지고 있었다. 멀쩡한 국영상점의 한편에서는 빼돌린 물건들이 거래되고 있었고 국영식당의 종업원은 내 눈앞에서 받은 돈의 절반을 제 몫으로 챙겼다. 도둑질이 무아지경에 이른 것처럼 보였던 이유는 그들 중 누구도 그 짓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도둑질은 아바나의 일상으로 승화되어 있었다.

21일의 쿠바여행 중 12일은 차를 빌려 쿠바 전역을 여행했다. 주유소를 지키고 있는 종업원들은 예외 없이 10대 후반이거나 20대 초반인 젊은이들이었다. “우린 사회봉사원들이에요.” 주유펌프를 빼지 못해 쩔쩔매던 그들 중 누군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아이들이나 노인들, 장애인들을 보살펴야 할 직업을 가진 그들이 엉뚱하게 주유소에 진을 치고 있었다. 지난 10월15일 이후 달라진 주유소의 풍경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주유소의 종업원들이 기름을 암시장에 빼돌리는 일들이 극성을 부렸기 때문에 단행된 물갈이 특별조처였다.

경제사정은 급격히 호전되고 있었지만 이런 일들은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 쿠바를 여행하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 스스로의 평가였다. 바라코아(Baracoa)의 한 쿠바인은 꽤 긴 시간을 할애해 자동차의 타이어와 휠, 건자재, 기름 등을 빼돌리는 ‘도둑질의 기술’에 대해 거리낌 없이 설파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던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이 분야에 투신한 후 단층집을 이층으로 올렸다. 그는 벽돌에서부터 변기와 세면대, 실리콘, 페인트에 이르기까지 모두 암시장에서 구했다는 자랑(?)을 빼놓지 않았다. 그 이층을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혼인신고를 했다는 그의 고백은 클라이맥스였다. 결혼을 사내의 무덤으로 믿고 있던 그의 혼인신고는 당연히 위장이었다. 그 집 이층은 불법의 총화였고 암시장의 결정체였다.

사회주의냐 죽음이냐

90년대 이후 성장일로를 겪었던 암시장은 초기에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굶느냐 사느냐. 국영창고를 터는 것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2000년대 들어 암시장은 질적인 변화를 겪었다. 더 이상 인민들은 목구멍에 풀칠을 하기 위해, 아이의 입에 흘려줄 눈물 섞인 우유를 위해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 이제 이 음습한 세계의 문은 오직 ‘국영달러상점’으로 통하고 있다. 배급품목과 생필품을 제외한 모든 상품이 진열되는 천국. 콘버터블페소(CUC, 전환페소)로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그곳의 문을 열기 위해 물건을 훔친다.

92년 비상시기 선포 이후 쿠바는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중국과 베트남, 라오스가 택했던 시장경제로의 길을 관광의 개방과 사회주의체제의 유지로 대신했다. 그래도 개방은 개방이다. 관광을 따라 달러와 함께 자본주의의 모든 것이 눈요기로 쏟아져 들어왔다. 정보와 상품, 자본주의적 욕망이 흘러들어왔다. 달러상점은 관광, 그리고 송금으로 흘러들어온 시중의 달러를 흡수하기 위해 부득이한 것이었지만, 달러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나누었고 평등이라는 부동의 사회주의적 가치에 균열을 냈다. 이것이 이중경제의 실체이다. 90년대 초 실시했던 자영업의 허가조처도 유사한 효과를 가져왔다. 부자가 생긴 것이다. 쿠바에 대한 모든 조롱과 비아냥은 이중경제로 빚어진 이런 우스꽝스러운 사회주의를 향하고 있다. 동시에 그 화살은 위기의 극복을 위해 시장경제를 도입하지 않는 고집스럽고 멍청한 사회주의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가 쿠바에 퍼붓고 있는 비난은 조롱을 뛰어넘어 혐오와 증오의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러나, 1989년 소련과 동유럽권 몰락 이후 쿠바가 걸어왔던 길은 고단하지만 한편으로는 비타협의 길이었다. 덩샤오핑의 가르침에 대한 유혹에 시달렸지만 결론은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는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건 이런 믿음이다. ‘검은 고양이도 쥐를 잡을 수는 있겠지만 종국엔 사람을 잡는다.’ 국가와 사회주의의 책임을 시장에 떠넘기지 않겠다는 이 믿음은 곧 ‘사회주의냐 죽음이냐’라는 구호로 표현되고 있다.

이중경제와 싸우는 쿠바 지도부의 노선은 간단하게 ‘사회주의로 사회주의를 지킨다.’로 요약할 수 있다. 92년 이후 허용했던 자영업 중 관광객을 상대로하는 까사 파티쿨라(Casa Particular, 민박업)와 팔라다레(Paladares, 식당) 업종에서 이른바 ‘달러부자’가 탄생하고 이것이 광범위한 불만을 야기하자 95년 쿠바는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후 경제적 상황이 나아질수록 이 조처는 지속적으로 강화되었다. 이제 월수입이 300달러인 민박업자는 월400불의 세금을 내야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한때 번성했던 팔라다레와 까사파티쿨라는 95년 이후 쇠락의 길을 걸어 이제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무상교육과 무상의료와 같은 사회보장제도는 비타협적으로 고수되어 왔고 국가재정지출의 우선순위에서 상위를 지켜왔다.

쿠바정부는 이중경제로 흡수된 달러를 재원으로 이중경제와 싸우고 있다. 달러에 대한 쿠바페소의 평가절상, 임금과 연금의 인상, 국영부문의 강화, 사회복지부문의 지출확대 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 성과를 예단하기란 쉽지 않지만 방향성만큼은 뚜렷하다.

유재현/소설가
유재현/소설가
21일간의 여행에서 내가 만든 모든 사람들은 직업과 처지 불문하고 대부분 불만이 많았다. 불만은 예외 없이 이중경제를 향해 쏟아졌다. 당연히 콘버터블페소를 향한 욕망 역시 두드러졌다. 나는 불만을 선동하면서 꾸준히 그들의 결론을 기다렸다. “체제를 바꿔야 하겠죠?” 내가 물었다. 내가 그들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그렇지’였다. 나는 정말 간절하게 이 말이 듣고 싶어 내가 부릴 수 있는 모든 술수를 부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은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그리고 평등의 이상까지 포기할 생각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건 그들이 갖고 있는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이 자부심이 불만을 뛰어넘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 쿠바 사회주의다. 이것을 1960년대 이후 쿠바가 고수해왔던 사회주의교육의 산물이라고 평가한다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와 상관없이 그것이 진실이라면 힘을 가질 것이고, 허위라면 붕괴할 것이다.

세계는 지금 오래 전에 몰락한 현실사회주의의 또 다른 실험을 지켜보고 있다. 이념을 뛰어넘어 세계사적인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는 실험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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