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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국어 내셔널리즘’을 극복하라

등록 2007-08-31 18:43수정 2007-09-01 23:32

디아스포라의 눈
디아스포라의 눈
디아스포라의 눈

올해 여름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와 있다. 8월19일 밤 늦게 도착했다. 오페라 공연을 네 번, 오케스트라 연주회도 네 번, 그리고 실내악을 한 번 감상할 예정이다.

그저께는 베를리오즈가 작곡한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를 봤다. 1838년 파리 초연은 무참하게 실패로 끝났고 그 뒤 지금까지 별로 상연 기회를 얻지 못한 작품이다. 줄거리는 단순해서, 16세기에 살았던 이탈리아 조각가 첼리니를 주인공으로 삼은, 사랑도 있고 살인사건도 있는 떠들썩한 활극인데, 이게 재미있었다. 이 오페라에는 교훈조나 설교 냄새를 거의 느낄 수 없다. 좋든 싫든 철저하게 세속적이다. 과연 프랑스 혁명을 거쳐 정교분리를 실현한 나라의 오페라답다. 그 부분이 재미있는 것이다. 도무지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주인공을 매력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건 인간성의 복잡함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 이해를 작품으로 엮어낼 만한 예술상의 모험정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수들은 그다지 유명하진 않은데, 특히 여주인공 역을 연기한 라트비아 출신의 소프라노 마이야 코발레프스카(Maija Kovalevska)는 아직 신인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젊었지만 소리도 연기도 뛰어났다. 한국 출신의 테너 박승근도 중요한 조연 가운데 하나를 훌륭하게 해냈다. 대단한 축제 분위기로 짜낸 대규모 연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최대 공로자는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다. 경탄할 만한 통솔력이다.

지난밤에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대니얼 하딩의 지휘로 감상했다. 오늘 밤은 이제부터 베버 작곡 〈마탄의 사수〉를 보러 간다.

〈마탄의 사수〉는 1821년 베를린에서 초연했다. 이 오페라는 베를리오즈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프랑스 혁명 뒤인 19세기 초의 유럽은 나폴레옹전쟁의 파도에 휩쓸려 전통적인 질서가 근저에서부터 흔들렸다.


“전세계 약 600만명의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모어와 모국어의 상극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수많은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들이 언어로 고통받고 있다. 그들의 모어와 문화를 대등한 것으로 존중함으로써 모든 언어가 공용어로 인정받고 유통되는 사회, 이런 열린 사회가 될 때 식민지의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혁명을 거쳐 강대한 중앙집권국가가 된 프랑스와 구태의연한 영방국가 집합체였던 독일 사이의 힘의 격차는 확연했으며, 전쟁 결과 독일을 명목상 통괄해온 신성로마제국은 소멸했다. 독일 각 지역이 나폴레옹군 지배 아래 들어갔고, 왕정 타도와 자유주의 개혁을 바라는 기운이 높아가는 한편으로 점령자 프랑스와는 다른 ‘독일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찾으려는 정신운동도 거세게 일어났다. 그 대표적인 것이 철학자 피히테의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연설이었다.

이런 변화는 음악의 세계에도 파급될 수밖에 없었다. 오페라는 이탈리아어로 해야만 되고 독일어 작품은 징슈필(노래극)이라며 오페라가 아니라고 했던 시대에 베버의 〈마탄의 사수〉는 등장했다. 가수의 아리아보다도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중시됐으며, 사용 언어도 노래하는 듯한 이탈리아어도 아니고 섬세한 프랑스어도 아닌, 자음이 많고 악센트가 분명한 독일어다.

종종 ‘가장 독일적’이라는 평을 받는 이 오페라의 무대는 17세기 초 보헤미아(당시에는 독일의 한 지방)의 어두운 숲이다. 숲에서 살고, 숲을 사랑하며, 숲을 무서워하는 ‘독일인’에 의한, ‘독일인’을 위한 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나폴레옹전쟁을 겪으면서 대항적인 근대적 아이덴티티가 형성돼 그런 ‘독일인’상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100년 뒤 나치가 베버와 바그너 음악을 상찬하고 국민동원에 활용한 역사도 잊어선 안 된다.

피히테는 ‘독일인’ 아이덴티티의 근거를 ‘독일어’에서 찾았다. 그에 따르면 독일어를 말하고, 독일어로 생각하는 인간이 ‘독일인’이다. 여기에 근대 ‘국어 내셔널리즘’의 원형이 있다. 당연히 프랑스에서도 프랑스혁명 뒤 일찍부터 국어교육을 철저하게 실시하고 정통적인 프랑스어를 말하는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프랑스인이라는 국어 내셔널리즘을 다른 어느 곳보다도 강력하게 실천했다.

잘츠부르크 체류를 마친 뒤 나는 노르웨이로 가서 오슬로대학에서 강연할 예정이다. 제목은 ‘모어(母語)와 모국어(母國語)의 상극’이라는 것인데, 그 결론 부분은 이렇다.

“현재 세계에 이산해 있는 총수 약 600만명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모어와 모국어의 상극으로 고통받고 있다. 한편 한국에는 이주 외국인 노동자 등 많은 정주 외국인이 살고 있다.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살게 된 외국인 여성도 늘고 있다. 이런 추세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지금 외국에서 한국으로 와서 사는 사람들에게 재일 조선인이 일본에서 겪은 것과 같은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모어와 가져온 문화를 대등한 것으로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사회를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면, 그것은 조선어는 물론이고 일본어·중국어·러시아어·영어, 그리고 언젠가는 베트남어도 공용어로 인정받고 유통되는 그런 사회다. 그런 가장 열린 사회에서 각각의 구성원을 묶어주는 것은 식민지 지배를 받은 역사의 기억과 그런 역사를 피해자로서는 물론이요 가해자로서도 다시는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모럴이다. 이 유토피아 실현을 막는 장애는, 한국의 경우엔 먼저 국민 다수의 무의식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국어 내셔널리즘이라 할 수 있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성공회대 연구교수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성공회대 연구교수
분단을 극복한 조선반도라는 장을 중심으로 쌓아올린 새로운 다언어·다민족 공동체※이런 유토피아상조차 상상해낼 수 없다면 기왕에 받은 식민지 지배에서 일궈낼 보람이 없지 않을까.”

내가 여기서 말한 과제는 피히테나 베버 시대 이래 우리 인류가 고뇌를 거듭하면서도 해답을 찾아내지 못한 과제다. 그런 만큼 거기에 어떻게 해서든 회답하려는 시도는 높은 보편성을 지닌다. 근대국민국가를 넘어 ‘유럽 시민’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강조하고 있는 오늘의 유럽에서 베버는 어떻게 해석되고 어떻게 수용될까. 스릴 만점의 흥미 속에 오늘 밤 오페라를 즐기려 한다.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성공회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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