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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사람의 본질 꿰뚫는 ‘인터뷰의 기술’

등록 2008-04-25 19:48

〈그녀에게 말하다〉
〈그녀에게 말하다〉
한미화의 따뜻한 책읽기 /

〈그녀에게 말하다〉
김혜리 지음/씨네21·1만3000원

책을 읽다 보면 “이 사람은 참 글을 잘 쓰는구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순간이 있다. 이럴 때 독자로서 가슴이 충만해지고 지은이가 존경스러워진다. 하지만 문학적 글쓰기가 아닌 인터뷰나 기사를 잘 쓰는 이들을 만나면 처음에는 행복하다가 뒤이어 질투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마지막에는 아둔한 내 글쓰기를 책망하기에 이른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이들은 유머가 풍부하고 날렵한 솜씨를 자랑하는 글쟁이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신문이나 잡지에 곧 사라질 운명을 지닌 글을 쓴다. 물론 간혹 이런 저주받은 운명을 거스르는 경우도 생긴다. 김경의 <뷰티풀 몬스터>나, 신윤동욱의 <플라이 인 더 시티>는 운명을 거스르고 살아남은 책들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목록에 새로이 한 권을 추가한다. 김혜리 기자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그녀에게 말하다>라는 책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영화잡지에 실었던 인터뷰를 한 권의 책으로 모았다. 그래서 안성기, 김혜수, 문소리, 송강호 등 영화인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하지만 영화인만이 아니라 그의 편견으로 골랐음직한 문화적 인물들이 더러 있다. 지금은 방송이 종료되었지만 20년 동안 <전영혁의 음악세계>의 디스크자키를 맡았던 전영혁, <순풍산부인과>부터 <거침없이 하이킥>까지 시트콤을 만들어 온 김병욱 감독, 북디자이너 정병규 선생 등이 그렇다. 그가 만난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모두 다르지만 한 가지는 같다. 김혜리가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짐작건대 그는 마감에 쫓겨 전화기를 돌려대며 하루이틀 사이에 서둘러 약속을 잡고 그들을 만나지는 않았을 터이다. 마치 스토커라도 되는 듯 오랫동안 자신이 만나야 할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고 있다가, 움직임이 포착된 순간 그들을 노렸을 게 분명하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인터뷰를 두고 “파장이 맞으면 답하고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비약이랄까, 변증법적 발전이 생긴다”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보통 인터뷰는 질문받는 사람이 시험을 치르는 자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동시에 질문하는 사람 역시 시험을 당하고야 만다. 인터뷰는 고도의 정신적 상호작용이고, 그래서 인터뷰어는 자기가 물어본 만큼만 가져간다.
한미화의 따뜻한 책읽기
한미화의 따뜻한 책읽기
인터뷰는 상대뿐 아니라 자신의 내공을 시험하는, 무서울 만큼 정직한 자리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김병욱 감독처럼 수줍음을 잘 타는 인물이 어떻게 시트콤을 만들까. 김혜리는 그에게 소수자의 분노가 있음을 눈치 챈다. 분노는 전복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시트콤은 탄생한다. 소설가 박민규의 글을 촘촘하게 읽어내고는, 그가 몽상을 서술하거나 막간극을 삽입하는 지점을 어떻게 선택하는지를 묻는다. 그저 즉흥적으로 할 뿐이라는 대답이야말로 ‘잡기 힘든 공 잡지 말고 치기 힘든 공 치지 말자’는 소설가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직접 하지 못하는 일들이 궁금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책을 읽는다. 직접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인터뷰를 읽는다. 아마 김혜리가 만난 사람들을 내가 직접 만났다 해도 그가 듣고 온 만큼은 듣고 오지 못했으리라.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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