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
한미화의 따뜻한 책읽기 /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
오영욱 지음/예담·1만5000원 후배가 살던 방을 빼서 6개월쯤 여행을 하겠다며 떠났다. 살던 방까지 정리하고 여행길에 나선다는 건 소설가 김형경처럼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예술가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한데 이제는 떠남도 유행인가 보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 나이에 결혼도 하고 애도 키우느라 정신없었는데…, 하여간 버릴 것이 없으니 잘도 간다. 여행 간 후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화살이 내게로 돌아왔다. 내가 후배의 떠남에 일조를 했다는 책임론이 제기되었는데, 들어보니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라는 책을 후배에게 선물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번 시즌에도 여행자의 로망을 꿈꾸는 이들에게 어느덧 상징적 존재가 되어 버린 오기사, 오영욱씨의 세 번째 책,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가 나왔다. 오기사가 세상에 알려지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건 그의 블로그다. 근황이 궁금해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트레이드 마크가 된 안전모를 쓴 오기사 카툰 아래 ‘어느덧 아저씨’라고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이제 삽십대 초반인데 무슨 아저씨인가 싶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십대에게 삼십대란 시인 최승자의 말처럼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찾아오는 거니까,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이십대 후반 무턱대고 직장을 그만둔 채 여행길에 나섰던 젊은이는 그러니까 4년여가 지나 삼십대 초반이 되어 드디어 국내에 정착했다. 그걸 기념하는 책이 바로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가 아닌가 싶다. 나로서는 오기사가 아저씨가 된 것보다, 유목민에서 농경민으로 모습을 바꾼 오기사가 다시는 이런 책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묘한 애틋함이 들었다. 처음 오기사 책을 읽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문구점으로 뛰어가는 거였다. 가서 오기사가 쓰는 것과 똑같은 0.3㎜짜리 ○○펜 두 자루 사서 필통 속에 넣고는 빙그레 웃었다. 마치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는 듯이. 여전히 “바람을 맞으며 종이 위를 달리는 펜의 사각거림이 느껴지는” 오기사의 세 번째 여행기를 읽으며 왜 사람들은 오기사의 책을 좋아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어쩌면 좋아하는 게 아니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선 여행에 대한 로망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여자다. 이번 책을 내고도 저자사인회나 강연회 등을 했는데 그때마다 남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20~30대 여자들만 바글거렸다는 소문이다. 또 한 가지, 좋아하는 것 혹은 하고 싶은 것은 분명하지만 결정적으로 소심한 사람들이다. 마치 책 속의 오기사가 그러하듯 말이다. 오기사는 여행 중 빈에서 그라츠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출장을 다녀오는 건너편의 잘생긴 녀석을 보고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나도 멋있게 살고 싶었다. 어쩌면 멋있게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녀석만큼은 영원히 멋있어 보이지 못할지도 몰라”라고 말이다.
여행은 끝나고 오기사는 돌아왔지만 그가 뿌려놓은 로망은 다시 수많은 이들을 길 위에 서게 하리라.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오영욱 지음/예담·1만5000원 후배가 살던 방을 빼서 6개월쯤 여행을 하겠다며 떠났다. 살던 방까지 정리하고 여행길에 나선다는 건 소설가 김형경처럼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예술가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한데 이제는 떠남도 유행인가 보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 나이에 결혼도 하고 애도 키우느라 정신없었는데…, 하여간 버릴 것이 없으니 잘도 간다. 여행 간 후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화살이 내게로 돌아왔다. 내가 후배의 떠남에 일조를 했다는 책임론이 제기되었는데, 들어보니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라는 책을 후배에게 선물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번 시즌에도 여행자의 로망을 꿈꾸는 이들에게 어느덧 상징적 존재가 되어 버린 오기사, 오영욱씨의 세 번째 책,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가 나왔다. 오기사가 세상에 알려지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건 그의 블로그다. 근황이 궁금해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트레이드 마크가 된 안전모를 쓴 오기사 카툰 아래 ‘어느덧 아저씨’라고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이제 삽십대 초반인데 무슨 아저씨인가 싶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십대에게 삼십대란 시인 최승자의 말처럼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찾아오는 거니까,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이십대 후반 무턱대고 직장을 그만둔 채 여행길에 나섰던 젊은이는 그러니까 4년여가 지나 삼십대 초반이 되어 드디어 국내에 정착했다. 그걸 기념하는 책이 바로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가 아닌가 싶다. 나로서는 오기사가 아저씨가 된 것보다, 유목민에서 농경민으로 모습을 바꾼 오기사가 다시는 이런 책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묘한 애틋함이 들었다. 처음 오기사 책을 읽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문구점으로 뛰어가는 거였다. 가서 오기사가 쓰는 것과 똑같은 0.3㎜짜리 ○○펜 두 자루 사서 필통 속에 넣고는 빙그레 웃었다. 마치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는 듯이. 여전히 “바람을 맞으며 종이 위를 달리는 펜의 사각거림이 느껴지는” 오기사의 세 번째 여행기를 읽으며 왜 사람들은 오기사의 책을 좋아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어쩌면 좋아하는 게 아니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선 여행에 대한 로망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여자다. 이번 책을 내고도 저자사인회나 강연회 등을 했는데 그때마다 남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20~30대 여자들만 바글거렸다는 소문이다. 또 한 가지, 좋아하는 것 혹은 하고 싶은 것은 분명하지만 결정적으로 소심한 사람들이다. 마치 책 속의 오기사가 그러하듯 말이다. 오기사는 여행 중 빈에서 그라츠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출장을 다녀오는 건너편의 잘생긴 녀석을 보고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나도 멋있게 살고 싶었다. 어쩌면 멋있게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녀석만큼은 영원히 멋있어 보이지 못할지도 몰라”라고 말이다.
여행은 끝나고 오기사는 돌아왔지만 그가 뿌려놓은 로망은 다시 수많은 이들을 길 위에 서게 하리라.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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