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산행기〉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 〈백수산행기〉
김서정 지음/부키·1만1000원 주변에 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 산행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있다. 가끔 산 타는 것이 무슨 영웅담인 양 말하는 사람에게는 그리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한다. 정말이지 얼마나 높은 데를 올랐고, 얼마 만에 주파했는지만을 중시한다면 굳이 왜 산에 오를까 싶다. 어쩌다 산에 관한 책 이야기도 들었다. 1980~90년대 산 책을 펴낸 출판사가 있었는데, 이즈음 활동이 적다고 안타까워했다. 나도 산을 좋아하기는 하나 정기적으로 오르지는 않는지라 심드렁하게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산행기를 읽고 말았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백수 산행기>. 알 만하지 않은가. 직장에서는 쫓겨나고 할 일 없어 빈둥거리다 마누라 눈치 보기도 지겨워 짐 싸서 산에 올랐을 터이고, 거기서 방전된 삶이 충전되는 경험을 했노라 말할 것이다. 내가 무슨 천리안이 있어 제목만 보고 내용을 금세 파악한 것은 아니다. 나도 한 시절을 그리 보낸 적이 있었기에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주로 탔던 산은 관악산이었다. 연주암까지 올라 천원 내고 먹은 비빔밥의 맛이란! 삶에서 좌절을 겪어본 사람만이 알 맛이다. 총각 때보다 30킬로그램 가까이 몸이 불어 산에 오르기가 겁났던 지은이가 북한산에 오르게 된 것도 실직 탓이었다. 흔히 등산 가자면, 올라야 맛이냐 밑에서 막걸리 마시고 있을 터니 얼른 내려오라고 하는 족속이 있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인물이었단다. 그런데 “운명처럼, 도둑처럼, 연인처럼, 분신처럼” 북한산이 눈에 들어왔고, 싸구려 등산장비를 사서 오르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 보면 안쓰럽다. 나처럼 소문난 게으름뱅이도 그냥 오르면 되던데, 이 양반 너무 소심하고 겁 많고 주저한다. 그래도 놀랍다. 결국에는 북한산에 대해 그 누구보다 두루 잘 알고 꿰뚫은 사람이 되었으니.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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