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체제가 저지른 살인’ 파헤치는 언론

등록 2009-01-23 18:40

〈밀레니엄 1-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밀레니엄 1-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

〈밀레니엄 1-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스티그 라르손 지음·임호경 옮김/아르테·1만2000원

연말연시를 공사다망하게 보내다 보면 책 읽는 습관에 비상등이 켜지게 된다. 연일 계속되는 술자리에, 한 해 마감하는 온갖 잡설에 치여 읽어도 건성으로 보기 마련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묘책이 있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면 된다는 것이다. 괜스레 목에 힘주려 하지 말고, 오로지 재미 삼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 제칠 수 있는 것이면 된다.

올 초에도 마음을 다잡으려 재미있을 법한 책을 잡았다. 딱딱한 이론서일 리는 없고, 이럴 땐 소설이 제격이다. 다음 쪽을 서둘러 읽고 싶을 정도로 안달할 만한 소설로 추리소설만 한 것이 없다. 더욱이 주변에서 입소문이 돌았다.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력도 흥미로웠다. 스웨덴 극우파에 대한 탐사보도로 이름을 날렸고, 노후 보장을 위해 추리소설을 썼는데, 탈고 직후 사망했다. 책이 크게 성공했지만, 정식 혼인관계가 아니란 이유로 부인이 인세를 한푼도 받지 못했단다. 스티그 라르손이 쓴 <밀레니엄> 시리즈의 첫 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읽게 된 연유다.

추리소설 읽고 그 내용을 잘못 말하면, 스포일러라 욕먹기 딱 맞다. 조심스럽기 짝이 없는데,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을 읽으며 느낀, 좀 엉뚱한 단상을 말하는 것이 나을 성싶다. 이즈음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아마도 극단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 놓은 작은 길이 이 체제라 여겨서인 듯싶다. 더불어 북구의 몇 나라가 이 체제로 국가를 운영하면서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이루어냈다는 현실도 관심을 끌 만한 이유다. 물론, 사회민주주의는 태어날 적부터 마르크스주의자한테 사이비로 몰려 파산선고를 받은지라, 묘한 선입견이 퍼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 지속 가능한 대안체제를 모색하는 이들에게 사회민주주의는 하나의 희망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어느 체제든 지상천국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미카엘은 작가의 분신으로 보면 딱 맞다. 특종 기사로 명망을 얻은 미카엘은 <밀레니엄>에 부패재벌의 비리를 폭로했으나, 오히려 함정에 빠져 실형을 선고받게 된다. 상식대로, 스웨덴도 재벌 중심으로 경제가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법도 그들의 편이다. 이 상황에서 주인공에게 동아줄을 던져준 인물은 쇠락한 재벌 반예르다. 두 재벌의 갈등은 이 체제에서도 산업자본보다 금융자본이 더 우세하다는 점을 확인케 해준다. 신자유주의 광풍에서 자유로운 곳은 없었다는 말이다.


이 소설은 가상의 반예르 집안에 새겨진 현실 스웨덴의 불행한 역사라 할 수도 있다. 한 집안에서 일어난 범죄에 빗대어 한 체제의 오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뜻이다. 거기에는 사실로 나치즘에 동조해 저지른 잘못이 있고, 상상으로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살인행각이 숨어 있다. 그 살인행각은, 말하자면 체제의 잉여가 느끼는 권태라 해석할 수밖에 없다. 부의 세습으로 발생한 유한계급이 저지를지도 모르는 극단의 범죄를 묘사해 놓은 것이다. 풍요로우면서도 평등해 보이는 체제도 무척 불안정한 것이다.

정말, 당연한 말이지만 양심적이고 실천적인 언론이야말로 체제의 건강성을 지키는 환기구다. 공권력이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살인사건을 언론인 출신의 주인공이 풀어나가는 것이 이를 상징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안타까움과 분노가 솟을 뿐이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