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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코앞의 달을 밟지 못한 남자

등록 2008-12-26 19:44

〈플라이 투 더 문〉
〈플라이 투 더 문〉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

〈플라이 투 더 문〉
마이클 콜린스 지음·최상구 옮김/뜨인돌·1만1000원

몇 해 전부터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에서 가려뽑는 올해의 과학책 작업에 참여했다. 여러 자리에 참여해 올해의 책을 뽑다보면, 조화와 균형 그리고 대중성을 따지게 된다. 아무리 빼어난 책이라도 너무 어려우면 빼기 십상이고, 가능하면 출판사가 겹치지 않도록 배려한다. 그러다보면, 전문가들이 보기에 아까운 책이 올해의 책이라는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끼리 모여 보란 듯이 좋은 과학책을 뽑아 보자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과학자가 아니면서도 이런 자리에 낄 수 있어 영광이긴 하나, 역할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주로 추천하는 책은 읽고 이해한 국내 저작물이다. 솔직하기는 하나, 전문성은 떨어진다. 그럼에도 내가 이 자리에 끼는 것은, 과학자들이 높이 평가하는 책의 기준과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다. 올해에는 <잡식동물의 딜레마> <조류독감> <살아 있는 지구>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숨겨진 우주> <공부도둑> <홍성욱의 과학에세이> <뇌의 왈츠> <타이슨이 연주하는 우주교향곡> <최종이론의 꿈>이 꼽혔다.

그런데 올해 모임에서 상당히 흥미롭게 논의된 책이 있으니, 마이클 콜린스가 쓴 <플라이 투 더 문>(Fly to the moon)이 그것이다. 젊은 과학자들이 이 책을 어린 시절 읽고 무척 감동받았다며, 청소년들이 읽어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놀랍게도 지은이는 아폴로 11호의 사령선 조종사였다. 당장 들은 의문이 있었으니, 그 이름이 왜 생소한가 하는 점이다. 답은 간단했다. 우리는 결국 달에 착륙해 자신의 발자국을 남긴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만 기억할 뿐이다. 이러니, 책을 읽지 않을 도리가 없다. 달 개척사에 큰 발걸음을 남겼는데도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진 인물이 저자인데다, 그 고독과 미련, 아쉬움을 견뎌내며 썼을 책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은이에게 많은 사람들이 물어본단다. 왜 사령선에 남아 있었냐고? 그의 답변은 솔직하다. 결정이 내려졌을 때 “상당히 낙담했다”고. 그런데 이유는 예상한 것과 다르다. 본디 그는 착륙선을 조정할 예정이었는데, 사정이 생겨 사령선을 맡게 되었다. 착륙선 조종방식은 헬리콥터 비행으로 연습했는데, 이게 보통 재미있는 것이 아니었단다. 그것을 못해 아쉬웠단다.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던 소명의식을 달리 표현한 것이라 이해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두 사람이 착륙선 이글호를 타고 달 표면으로 내려가자 사령선 컬럼비아호에는 그만 남았다.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착륙선과 휴스턴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무선교신도 하지 못했다. 달 뒷면을 비행할 때는 우주차원의 고독감에 시달렸다. “그 순간 나는 자신이 태어난 행성을 볼 수조차 없는 태양계 내의 유일한 생명체였다.” 그는 준비했고, 이겨냈고, 즐겼고, 마침내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새로운 역사는, 그래서 씌어졌다.


책을 덮으며 한해의 삶을 되돌아본다. 나는 과연 그런 자리에 있었던가? 세상이 주목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있어야 할 자리에서 내 역할을 충분히 했느냐는 질문이다. 이목이 집중하고 화제가 되는 자리를 탐한 것은 아닐까?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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