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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가면 뒤에 숨은 인격’의 위험

등록 2016-11-03 19:59수정 2016-11-03 20:06

정여울의 내마음속 도서관
고독의 위로
앤서니 스토 지음, 이순영 옮김/책읽는수요일(2016)

고독에 취약한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홀로 처리하지 못하고 늘 주변에 의존한다. 남에게 의존하는 것도 문제지만, 타인을 ‘도구’로 삼아 자신의 힘을 표현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의 ‘갑질’은 더욱 문제다. 그렇게 혼자서는 자신의 소임을 다할 수 없는 사람들, 고독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의 병폐가 세상을 망치고 있다.

심리학자 앤서니 스토의 <고독의 위로>는 ‘혼자 있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 매우 필수적인 능력임을 강조한다. 고독은 상처를 치유하고, 상실을 극복하고, 개개인을 창조적인 삶으로 이끄는 힘을 지녔다. 이 책은 두려움 없이 고독에 맞서는 능력이야말로 이별, 죽음, 스트레스 등을 극복하고, 내면 가장 깊숙한 곳의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축복임을 강조한다. 카프카, 베토벤, 바흐, 고야, 칸트, 비트겐슈타인, 뉴턴 등 역사를 이끌어간 인물들에게서 ‘고독’이 얼마나 창조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고독은 일종의 심리적 능력이다. 남들이 도와주지 않아도 자신이 충분히 ‘꽉 찬 존재’임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고독할 용기다. 겉치레에 집착하고, 남들 앞에서 뭔가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사람들은 사실 고독을 두려워하는 이들이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을 ‘페르소나 뒤로 숨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모든 행동이 가식적인 연기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의 특징은 타인 앞에서 진짜 자아를 보여줄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부모가 자신을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해 줄 거라 믿는 아이들은 내면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인식한다. 하지만 부모의 조건부 사랑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예컨대 공부를 잘해야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아이들은, 가치관의 기준을 ‘어른들에게 칭찬받는 것’에 두게 된다. 성공하거나 타인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자녀가 시험을 잘 봤을 때 부모가 과도하게 기뻐하거나 칭찬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내가 이렇게 해야만 부모님이 좋아한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성적에 집착한다. 돈이 많아야 훌륭한 가장으로 대접받는다는 생각도, 능력이 있어야 자식에게 대접받는다는 생각도 이런 ‘조건부 사랑’의 비극적인 결과물이다.

가면 뒤에 숨은 자아의 진짜 위험은 거짓 자아를 만들어 진짜 자아를 철저히 숨긴다는 점이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면서까지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 하는 이들은 자존감을 느끼기 위해 계속 외부 상황에 의존해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살아가면서 느끼는 이별, 죽음, 실패 등으로 인한 상실감에 취약해져버린다.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한동안 고독에 빠져 숙고를 마친 사람들은 다른 일에 도전할 용기를 낸다. 하지만 실패 이후의 고독을 견딜 수 없는 이들은 ‘지금 이 순간의 실패’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행동하며, 좌절감을 견딜 수 없는 나머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거짓 자아의 또 다른 위험은 ‘황당무계한 뻔뻔함’이다. 자기 이미지를 멋들어지게 치장한 뒤, 그 가면 뒤에 숨어 온갖 악독한 흉계를 꾸미는 사람들은 고독 속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청맹과니들이다. 고독할 수 있는 용기는 역경에 맞설 수 있는 내면의 힘이기도 하다. 고독이란 누가 뭐래도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살아갈 용기인 것이다.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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