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정여울의 내마음속 도서관
빅터 프랭클 지음, 오승훈 옮김/청아출판사(2005) “매사에 너무 지나치게 의미부여하지마.” “넌 꼭 진지하게 의미를 찾더라, 그냥 가볍게 받아들여도 될 일을.” 무슨 일이든지 의미를 찾아야 직성이 풀리는 나에게 지인들이 던져준 조언들이다. 하지만 나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고통스러웠다. 그것도 남들이 부여한 의미가 아니라 내가 직접 부여한 의미여야만 했다. 타인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라도 ‘내가 진정으로 소중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의욕을 잃었다. 거꾸로 남들이 ‘도대체 힘들기만 한 그 일을 왜 하니’라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아도, 내가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면 절로 신명이 나곤 했다. 누가 뭐래도 내가 가장 뜨거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이 내겐 글쓰기였고, 인문학 공부였고,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쉬지 않고 책을 읽는 일이었고, 지금처럼 작가로 살아가는 일이었다. 직장도 연금도 안정감도 없는 이 삶을 선택하게 해준 것은 내가 그 안에서 가장 큰 삶의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반가웠다. <의미를 향한 소리없는 절규>(The Unheard Cry for Meaning)라니. 내가 고통스러웠던 모든 순간들을 절묘하게 요약하는 아름다운 제목이었다. 이 책의 핵심개념인 로고테라피(logotherapy)는 ‘의미를 찾음으로써 고통을 이겨내고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말한다. 약이나 의사를 찾지 않고도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로고테라피, 그것은 내가 겪고 있는 아픔에서 ‘의미’를 찾음으로써 그 의미의 힘으로 고통을 이겨내는 인간의 잠재력을 믿는 것이기도 하다. 의미는 제 발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때 비로소 나타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단지 ‘직장에 나가야 해’라는 의무감이 아니라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그는 이미 로고테라피를 실현한 셈이다. 나치의 수용소에서 매일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은 물론 살아갈 이유조차도 찾을 수 없었던 빅터 프랭클이 그 고통을 견디며 살아남아 위대한 심리학자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도 바로 ‘의미를 향한 멈출 수 없는 갈망’ 때문이었다. 그는 수용소에서 인간의 추악함도 매일 보았지만 인간의 아름다움도 매일 발견하려 애썼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동료의 아픔을 생각하며 서로를 돕는 사람들, 유머와 지식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으려 분투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계속 살아가야 할 의미를 발견했다. 그는 수용소에 갇혀 견디고 있는 고통이 훗날 자신이 더욱 훌륭한 학자가 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임을 믿었다. “인간은 자신이 추구하던 의미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그로 인한 고통을 각오하고 희생을 감내하며 필요하다면 생명까지도 바친다. 반대로 의미를 잃으면 인간은 자살 충동을 느낀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고립감 속에서도 위대한 예술을 창조하는 몸짓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았던 고흐도, ‘나는 음악가인데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고통을 견디고 오히려 귀가 거의 먼 상태에서 더욱 위대한 음악을 창조했던 베토벤도, 바깥세상의 박수소리가 아니라 내면의 ‘의미’를 탐구하는 데 전력투구했던 것이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음으로써 매일매일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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