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 내마음속 도서관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시모어 번스타인·앤드루 하비 지음, 장호연 옮김/
마음산책(2017) 영화 <원데이>를 보다가 깜짝 놀란 장면이 있다. 작가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엠마(앤 헤서웨이)에게 덱스터(짐 스터게스)가 하는 말. “할 수 있는 자는 행하고, 하지 못하는 자는 가르친다.(Those who can, do. And those who can’t, teach.)” 안 그래도 자신의 재능을 확신하지 못하는 친구가 힘들어하는데,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며 천천히 미래를 준비하는 그녀에게 그런 끔찍한 말을 하다니. 게다가 그 말은 틀렸다. 저 문장에 생략된 단어는 ‘재능’이나 ‘능력’이다. 재능과 능력이 출중한 사람은 이미 그 일을 하고 있고, 재능과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가르친다는 것.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그 일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도 하고, 가르치기만 하던 사람들도 언젠가는 훌륭한 예술가가 된다. 영화 속 엠마도 보란 듯이 작가로서 성공한다.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은 ‘피아노를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는 재능’을 ‘피아노 연주를 완벽하게 가르칠 수 있는 재능’과 맞바꾼 한 피아니스트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람들은 최고의 기량을 갖춘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타인이 전성기 때 갑자기 은퇴해버린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솔로 피아니스트로 화려하게 활동하던 과거를 버리고, 작은 스튜디오를 차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만족하는 그의 삶을 ‘후퇴’이자 ‘도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번스타인은 ‘음악을 더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그 길을 택했다. 그러니까 피아니스트를 스타로 키우기 위한 시스템에 들어가 자신이 점점 비평가와 언론의 감시 속에서 점점 망가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번스타인의 선택은 결코 후퇴가 아니라 전진이며 끊임없이 재능이 소진되는 스타 양성식 매니지먼트의 그늘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나 자신이 되는 길 위에 서는 용감한 선택이었다. 무대공포증으로 인한 은퇴가 아니라 음악을 더욱 제대로 사랑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모험적인 선택이었다. ‘가르칠 수 있는 재능’은 뛰어난 예술가들도 지니지 못한 경우가 많다. 가르칠 수 있는 재능이야말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희열에 속한다. 자기 혼자 재능을 펼치는 사람들은 많지만, 자신의 재능을 다음 세대에게 완벽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지닌 사람들은 드물다. 가르치는 건 그냥 혼자 해내는 것보다 더 어렵다.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것은 ‘그게 과연 가능할까’라는 내 마음의 장벽과 싸우는 일이다. 글을 쓰는 것은 나 혼자 열심히 하면 되지만, 가르치는 것은 학생들과 내가 함께 진정으로 교감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함(doing)’을 좋아하지만, ‘가르침(teaching)’은 누구나 견딜 수 있는 긴장이 아니다. ‘함’이 곧 ‘가르침’이 되는 경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나의 ‘함’이 곧 누군가에게 나 자신도 모르게 ‘가르침’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의 제목처럼 삶을 더욱 아름답게 연주(Play life more beautifully)하기 위해, 삶을 더욱 눈부시게 가꾸기 위해. 오늘도 나는 ‘함(doing)’과 ‘가르침(teaching)’ 사이에 존재한다. 정여울 문학평론가
시모어 번스타인·앤드루 하비 지음, 장호연 옮김/
마음산책(2017) 영화 <원데이>를 보다가 깜짝 놀란 장면이 있다. 작가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엠마(앤 헤서웨이)에게 덱스터(짐 스터게스)가 하는 말. “할 수 있는 자는 행하고, 하지 못하는 자는 가르친다.(Those who can, do. And those who can’t, teach.)” 안 그래도 자신의 재능을 확신하지 못하는 친구가 힘들어하는데,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며 천천히 미래를 준비하는 그녀에게 그런 끔찍한 말을 하다니. 게다가 그 말은 틀렸다. 저 문장에 생략된 단어는 ‘재능’이나 ‘능력’이다. 재능과 능력이 출중한 사람은 이미 그 일을 하고 있고, 재능과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가르친다는 것.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그 일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도 하고, 가르치기만 하던 사람들도 언젠가는 훌륭한 예술가가 된다. 영화 속 엠마도 보란 듯이 작가로서 성공한다.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은 ‘피아노를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는 재능’을 ‘피아노 연주를 완벽하게 가르칠 수 있는 재능’과 맞바꾼 한 피아니스트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람들은 최고의 기량을 갖춘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타인이 전성기 때 갑자기 은퇴해버린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솔로 피아니스트로 화려하게 활동하던 과거를 버리고, 작은 스튜디오를 차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만족하는 그의 삶을 ‘후퇴’이자 ‘도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번스타인은 ‘음악을 더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그 길을 택했다. 그러니까 피아니스트를 스타로 키우기 위한 시스템에 들어가 자신이 점점 비평가와 언론의 감시 속에서 점점 망가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번스타인의 선택은 결코 후퇴가 아니라 전진이며 끊임없이 재능이 소진되는 스타 양성식 매니지먼트의 그늘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나 자신이 되는 길 위에 서는 용감한 선택이었다. 무대공포증으로 인한 은퇴가 아니라 음악을 더욱 제대로 사랑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모험적인 선택이었다. ‘가르칠 수 있는 재능’은 뛰어난 예술가들도 지니지 못한 경우가 많다. 가르칠 수 있는 재능이야말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희열에 속한다. 자기 혼자 재능을 펼치는 사람들은 많지만, 자신의 재능을 다음 세대에게 완벽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지닌 사람들은 드물다. 가르치는 건 그냥 혼자 해내는 것보다 더 어렵다.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것은 ‘그게 과연 가능할까’라는 내 마음의 장벽과 싸우는 일이다. 글을 쓰는 것은 나 혼자 열심히 하면 되지만, 가르치는 것은 학생들과 내가 함께 진정으로 교감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함(doing)’을 좋아하지만, ‘가르침(teaching)’은 누구나 견딜 수 있는 긴장이 아니다. ‘함’이 곧 ‘가르침’이 되는 경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나의 ‘함’이 곧 누군가에게 나 자신도 모르게 ‘가르침’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의 제목처럼 삶을 더욱 아름답게 연주(Play life more beautifully)하기 위해, 삶을 더욱 눈부시게 가꾸기 위해. 오늘도 나는 ‘함(doing)’과 ‘가르침(teaching)’ 사이에 존재한다.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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