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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직업으로서의 작가, 그 험난한 생존의 투쟁

등록 2018-04-12 19:50수정 2018-04-12 19:56

정여울의 내마음속 도서관

밥벌이로써의 글쓰기-작가로 먹고살고 싶은 이들을 위한 33가지 조언
록산 게이·셰릴 스트레이드·닉 혼비·만줄라 마틴 지음, 정미화 옮김/북라이프(2018)

어떡하지? 아직도 난 안정적이지 않구나. 언제쯤 전업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작가가 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걸핏하면 빠져드는 고민이다. 작가로서의 안정감은 경제적인 문제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경제적인 문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뒤에도, ‘작가라는 존재 자체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직장이 없는 자유직의 불안뿐 아니라 ‘과연 내가 내 길을 맞게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라는 원초적인 불안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밥벌이로써의 글쓰기>는 ‘작가와 안정된 삶’의 문제, 즉 ‘직업으로서의 작가’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수많은 작가들의 다양한 입장을 들려준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작가들조차 알고 보면 엄청난 경제적 어려움을 거의 빠짐없이 겪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 또 그들 중 대부분이 전업작가가 아니라 카피라이터, 강사, 책이나 잡지 편집, 또는 목수 같은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겸업하고 있다는 사실이 커다란 위안을 준다. 미용실 갈 돈이 없어 직접 머리카락을 자른 작가의 이야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인세가 지급되지 않아 집세를 내지 못하고 카드빚에 허덕여야 했던 작가의 이야기, 대필작가 또는 섀도우 라이터라는 작가로서의 자존감을 위협하는 일까지 해야 했던 작가들의 이야기. 이 모든 현장감 넘치는 실화들은 바로 지금 이 자본주의 세계에서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온몸으로 증언해준다.

하지만 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뜨거운 진실은 하나다. 어떤 급박한 상황에서도 ‘나는 좋은 글을 쓰고 싶고, 쓸 수 있으며, 반드시 쓸 것이다’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단지 제목처럼 ‘밥벌이로써의 글쓰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 작가로 살아남는다는 것, 동성애자 작가나 유색인종 작가로서 ‘백인 남성’ 중심의 문단에서 소외당하며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다. 꿈과 생계, 창작과 출판, 예술성과 상업성, 그리고 ‘지금 해야 하는 일’과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사이의 간극. 이 모든 것들이 결국 글쓰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마주해야 할 자기 안의 전투다.

나는 책을 낼 때마다 ‘이 책이 부디 다음 책을 출간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를’ 기원하곤 한다. 대단한 성공은 아니더라도, ‘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주는 책이 되기를 빈다. 글을 쓰며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글을 쓰지 않고 멀쩡히 살아가는 일’은 나에게 훨씬 고통스러운 일이다. 글을 쓸 수 있을 때,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비로소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밥벌이로써의 글쓰기는 물론 어렵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는 더욱 힘들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이 힘겨운 글쓰기의 과정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더욱 아프게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나답게 살기를 포기하는 ‘피플 플리저’(people pleaser)같은 작가가 되기는 싫다. 누가 뭐래도 내가 마음 깊이 원하는 글쓰기, 내가 먼저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글쓰기로 이 무시무시한 정글의 법칙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고 싶다.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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