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정여울의 내 마음속 도서관
소로의 야생화 일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제프 위스너 엮음, 김잔디 옮김/위즈덤하우스(2017) 20대를 위한 인문학 강연을 시작할 때 문득 이런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여러분, 둘 중에 어떤 걸 고르고 싶으세요? 첫째, 기대에 가득 차서 언제든지 실망할 가능성이 있는 삶, 둘째,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아서 실망조차 할 필요가 없는 삶.” 젊은이들은 잠시 헷갈리는 표정을 지었다. 첫 번째 삶은 실망할 가능성이 높은 대신, 기대에 가득 차 활기차고 열정적으로 살 수 있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두 번째 삶은 실망할 가능성이 낮은 대신 쉽게 무기력해지고 시니컬해지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꿈을 이뤄봤자 뭐가 좋겠어’라는 식의 부정적인 태도로 치닫기 쉽다. 어떤 젊은이는 ‘머리’로는 첫 번째 삶을 택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두 번째 삶, 즉 기대도 희망도 없는 삶에 가까워져서 두렵다고 했다. 나는 20대 시절 두 번째 삶, 즉 기대도 희망도 없는 삶이 ‘훨씬 편하다’고 생각했고, 그 어리석음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고통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여러분은 절대로 그런 삶을 택하지 말라고, 마음껏 절망하고 얼마든지 실패해도 좋으니 제발 희망과 기대를 잃지 않는 삶을 살아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본래 희망과 믿음을 가지도록 설계되었지만 온갖 실패와 타인의 시선 때문에 ‘기대 자체를 낮추는 쪽’으로 선회하게 된다. 나는 <소로의 야생화 일기>를 읽으며 그에게 배워야 할 것이 바로 ‘믿음과 기대를 잃어버리지 않는 태도’임을 알게 되었다. 소로는 홀로 콩코드의 울창한 숲을 탐사하며 야생화를 관찰하는 식물학자이기도 했다. 어떤 꽃이 매년 어느 날짜에 다시 피어나는지를 마치 은행장부 관리하듯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았던 그에게는,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 지속되어도 ‘언젠가는 봄꽃이 피어나리라는 희망’이 절실했다. 그는 하버드 출신의 엘리트였지만 친구들처럼 성공가도를 달리는 대신 숲속의 현자로 홀로 살아남는 길을 택한다. 그가 괴짜여서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야말로 스스로의 욕망에 치여 질식사할 위험에 처한 욕심꾸러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힘임을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로는 밤이 아무리 길고 무서워도 반드시 새벽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잃지 않았으며, 겨울이 아무리 혹독해도 이듬해 봄에는 반드시 그가 사랑하는 야생화가 피어날 것을 믿음으로써 고독을 견뎌낸 것이다. 그에게는 도시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 이를테면 숲속에서는 매일매일, 심지어 매시간 꽃들의 표정과 나무의 빛깔이 다르다는 사실이 보였을 것이다. 그 경이로운 자연의 디테일을 바라보며 매번 경탄하는 마음, 아무리 힘들어도 기대하고, 희망하고, 기다리는 마음이야말로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소로의 순수였으며, 그를 아름다운 숲속의 현자로 만든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우리도 삶을 향해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말았으면. 다만 기대의 초점을 이동하는 지혜는 필요하다. 기대의 대상을 외부가 아니라 내면으로 돌리는 것, 즉 ‘복권이 당첨되길’ 기대하기보다는 ‘내가 더 나은 존재가 되기를’, ‘타인에게 더욱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기대한다. 내일은 더 친절하고, 따스하고, 사려깊은 존재가 되기를. 내년엔 좀 더 지혜롭고, 창조적이며, 이토록 머나먼 당신의 마음을 향해 좀 더 가까이, 불현듯 성큼 다가가는 글을 쓸 수 있기를. 정여울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제프 위스너 엮음, 김잔디 옮김/위즈덤하우스(2017) 20대를 위한 인문학 강연을 시작할 때 문득 이런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여러분, 둘 중에 어떤 걸 고르고 싶으세요? 첫째, 기대에 가득 차서 언제든지 실망할 가능성이 있는 삶, 둘째,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아서 실망조차 할 필요가 없는 삶.” 젊은이들은 잠시 헷갈리는 표정을 지었다. 첫 번째 삶은 실망할 가능성이 높은 대신, 기대에 가득 차 활기차고 열정적으로 살 수 있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두 번째 삶은 실망할 가능성이 낮은 대신 쉽게 무기력해지고 시니컬해지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꿈을 이뤄봤자 뭐가 좋겠어’라는 식의 부정적인 태도로 치닫기 쉽다. 어떤 젊은이는 ‘머리’로는 첫 번째 삶을 택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두 번째 삶, 즉 기대도 희망도 없는 삶에 가까워져서 두렵다고 했다. 나는 20대 시절 두 번째 삶, 즉 기대도 희망도 없는 삶이 ‘훨씬 편하다’고 생각했고, 그 어리석음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고통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여러분은 절대로 그런 삶을 택하지 말라고, 마음껏 절망하고 얼마든지 실패해도 좋으니 제발 희망과 기대를 잃지 않는 삶을 살아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본래 희망과 믿음을 가지도록 설계되었지만 온갖 실패와 타인의 시선 때문에 ‘기대 자체를 낮추는 쪽’으로 선회하게 된다. 나는 <소로의 야생화 일기>를 읽으며 그에게 배워야 할 것이 바로 ‘믿음과 기대를 잃어버리지 않는 태도’임을 알게 되었다. 소로는 홀로 콩코드의 울창한 숲을 탐사하며 야생화를 관찰하는 식물학자이기도 했다. 어떤 꽃이 매년 어느 날짜에 다시 피어나는지를 마치 은행장부 관리하듯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았던 그에게는,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 지속되어도 ‘언젠가는 봄꽃이 피어나리라는 희망’이 절실했다. 그는 하버드 출신의 엘리트였지만 친구들처럼 성공가도를 달리는 대신 숲속의 현자로 홀로 살아남는 길을 택한다. 그가 괴짜여서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야말로 스스로의 욕망에 치여 질식사할 위험에 처한 욕심꾸러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힘임을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로는 밤이 아무리 길고 무서워도 반드시 새벽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잃지 않았으며, 겨울이 아무리 혹독해도 이듬해 봄에는 반드시 그가 사랑하는 야생화가 피어날 것을 믿음으로써 고독을 견뎌낸 것이다. 그에게는 도시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 이를테면 숲속에서는 매일매일, 심지어 매시간 꽃들의 표정과 나무의 빛깔이 다르다는 사실이 보였을 것이다. 그 경이로운 자연의 디테일을 바라보며 매번 경탄하는 마음, 아무리 힘들어도 기대하고, 희망하고, 기다리는 마음이야말로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소로의 순수였으며, 그를 아름다운 숲속의 현자로 만든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우리도 삶을 향해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말았으면. 다만 기대의 초점을 이동하는 지혜는 필요하다. 기대의 대상을 외부가 아니라 내면으로 돌리는 것, 즉 ‘복권이 당첨되길’ 기대하기보다는 ‘내가 더 나은 존재가 되기를’, ‘타인에게 더욱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기대한다. 내일은 더 친절하고, 따스하고, 사려깊은 존재가 되기를. 내년엔 좀 더 지혜롭고, 창조적이며, 이토록 머나먼 당신의 마음을 향해 좀 더 가까이, 불현듯 성큼 다가가는 글을 쓸 수 있기를.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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