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마지막 순간까지, 열정적인 독자이기를

등록 2019-02-01 06:01수정 2019-02-01 18:35

정여울의 내마음속 도서관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
윌 슈발브 지음, 전행선 옮김/21세기북스(2012)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상황은 급박하지만, 그 상황을 견디는 사람은 신기하리만치 차분하고 담담한 이야기. 담백하게 아픔을 견디지만, 침울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루를 활기차게 살아갈 힘을 주는 이야기.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중에 정말 힘들 때 꼭 다시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저자는 ‘유명출판사의 편집장’(<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기획자 윌 슈발브)이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췌장암으로 죽어가는 어머니’다. 어머니의 화학치료를 기다리는 병원대기실에서 아들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지만, ‘요즘 읽는 책 이야기’를 꺼내자 어머니의 표정은 환해진다. 이때부터 화학치료일마다 모자(母子)는 둘만의 ‘북클럽’을 꾸려나간다. 고통스러운 암 치료를 앞두고 어머니는 초조할 법도 하건만, 아들과의 북클럽이 기다리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힘겨운 치료를 이겨나갈 힘을 얻는다. 아들은 어머니에 대한 더 깊은 사랑을 체험한다. 어머니에게 어떻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활동, ‘책 읽기’를 함께 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효도는 없지 않을까.

이 책의 작가 윌 슈발브의 어머니 메리 앤 슈발브는 평생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도전하고, 고통에 빠진 타인을 돕고, 쉼 없이 책을 읽는 삶’을 가르치고 실천한 분이다. 하버드대학 입학처장을 지내고, 아프가니스탄에 도서관을 짓기 위해 분투하고, 전 세계 난민 돕기 운동에 참여하며 27개국을 방문하고, 그러면서도 세 아이의 훌륭한 어머니로 살아가는 동안, 어머니가 한 번도 멈춰본 적이 없는 일이 바로 독서였다. 주말에 멀리 소풍을 가기보다는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조용히 각자 책을 읽는 집안에서 자란 아들은 가끔은 어머니의 ‘과도한 책사랑’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책과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모여 자신의 삶이 깊고 그윽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불치병에 걸린 엄마와 함께 하는 마지막 북클럽은 슬프기보다는 하루하루 설레고, 활기차며,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병원의 고통스러운 치료를 기다리는 동안, 대기실에서 진행된 엄마와 아들의 간절한 북클럽은 때로는 가슴 뭉클한 우정의 이야기처럼 읽히기도 하고, 엄마와 아들의 영원한 이별의 준비운동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이야기 속의 어머니가 너무도 사랑스러운 분이라 꼭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었지만, 이미 세상을 떠나셨기에 이메일조차 보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가슴 아플 정도로, 나는 ‘책에 미친, 남의 어머니’를 사랑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책을 좋아하시는데, 글을 써보시면 어때요’라는 권유에, 어머니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한다.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감상의 기쁨, 조용히 바라보는 자의 기쁨이 때로는 창작의 기쁨, 직접 만들어내는 기쁨보다 더 클 수 있다. 좀처럼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않는 어머니 메리 앤이 가장 힘들어하는 하루는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각한 날이다.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아직 힘이 남아 있다는 것, 아픔을 견딜 용기가 남아 있다는 것,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니까. 죽기 직전까지 행복하고 싶은 나는, 오늘도 책을 읽으며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작은 행복을 찾는다.

작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