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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툭하면 들먹이는 ‘네티즌’ 실체나 있는건지

등록 2006-03-15 18:33

정이현 소설가
정이현 소설가
저공비행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먼저 컴퓨터의 전원을 켠다. 윙윙 윈도우 부팅 소리를 들으며 또 하루를 시작한다. 인터넷을 하루에 대략 얼마나 사용하는 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겠다. (원고 마감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친애하는 나의 편집자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싶지는 않다.) 어쨌거나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인터넷 사용시간보다 짧지는 않으리라고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언제부터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치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통신’의 세계라면 1993년에 처음 입문했다. 본격적으로 불타오른 건 1994년 나우누리가 설립되면서부터다. 그때나 지금이나 ‘오픈 기념, 한 달 무료이용권 증정’의 효과는 엄청나다. (믿어지는가? 통신서비스를, 돈 내고 이용하던 시절이 있었다니!) 무료이용자에서 유료이용자로 전환신청을 하면서 망설이지 않은 이유는, 이미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밤이면 밤마다 (전화국에서 무료로 대여해온) 단말기 앞에 웅크리고 앉아 나는 동호회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채팅을 했으며, 친구들을 만나고, 인생을 배웠다. 세상에 이런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그야말로 벼락같은 충격이었다.

뭐, 이만하면 나의 ‘넷(net) 역사’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만큼은 된다. 그런데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용어가 하나 있으니, 바로 ‘네티즌’ 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아쉬울 때는 역시 네이버로 달려간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네티즌은 ‘시티즌과 네트워크의 합성어이며 (중간생략) 하우번(Hauben)이라는 사람에 의해 처음 소개된 개념’ 이라고 한다. 하우번에 의하면 단순히 통신망을 도구로 활용하는 사람은 네티즌이 아니란다. 통신망에 대한 공동체적 관점을 가지고 온라인 공동체를 형성하는 문화적 활동 주체가 바로 네티즌이라는 거다. 아, 어렵다.

그렇다면 2006년 대한민국에서 네티즌이란 과연 어떤 집단일까. 언뜻 네티즌은 대한민국의 주인인 동시에 오피니언 리더인 것처럼 느껴진다. 자, 다음의 문장을 보자. ‘가수 L의 뮤직비디오가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또는 ‘네티즌, 정치인들에게 야구정신을 배우라고 충고하다.’ 여기서 주어가 되는 네티즌은 대관절 누구란 말인가. 나는 물론이려니와 내 주변에서도 그런 의견을 가진 인간들은 하나도 보지 못했는데? 사방에서 네티즌이 어쩌고저쩌고 했다는 풍문만 요란할 뿐, 정작 네티즌의 실체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네티즌 여론이라는 게 실재하는 지도 의문이지만, 주류 언론에서는 그동안 아무런 성찰이나 고민도 없이 ‘네티즌여론=국민여론’의 개념을 사용해왔다. ‘국민들은’ 이나 ‘시민반응은’ 보다는 ‘네티즌들은’ 이라고 시작하는 편이 좀 ‘있어’ 보이기는 하겠지.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실체도 모호한 ‘네티즌’이라는 단어를 제 입맛과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호명해댈 뿐더러,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 뒤에 숨어 ‘네티즌’에게 책임을 덮어씌우는 태도는 이제 지겹다.

인터넷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진입하여 일상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 되었다. 인터넷 이용자의 숫자가 2000만 명이란다. 수천만 명의 인간들은 제각각 수천만가지의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단순히 인터넷에 접속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네티즌’ 이라는 구태의연한 호명으로 한데 묶어 부르는 것이 가능한가? ‘네티즌’의 의견은 ‘국민’이나 ‘시민’의 의견과 어떻게 다른가? 그들의 사유를, ‘열광’ 이나 ‘비난’으로, 일정하게 패턴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가?

거리를 걸어가는 저 수많은 행인들 하나하나가 다 그렇듯이, ‘네티즌’은 그렇게 단순하거나 단일한 존재가 아니다.

정이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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