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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인생은 ‘한방’ 이 아님을 소설속 인물도 우리도 알기에

등록 2006-03-22 22:42

정이현 소설가
정이현 소설가
저공비행
소설을 쓰다 보면 놀라운 순간과 맞닥뜨릴 때가 있다. 처음에 내 손으로 빚어놓은 캐릭터가, 서사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변해가더니 어느 순간 작가의 통제권을 벗어나 버리는 것이다. 작중 인물이 스스로의 고유한 생명력으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느끼면, ‘어미’ 입장에서는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가 막히기도 하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애초에 만들어둔 구성 안에 따르면, 주인공은 이 시점에서 분명히 동쪽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제 갈 길을 알았다는 듯 뚜벅뚜벅 서쪽으로 떠나 버린다. 왜 그러느냐고 눈물로 읍소해 봐도, 돌아오라고 바지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져 봐도, 이미 제 운명의 패를 손에 쥐어버린 그는 작가를 흘낏 한번 바라보고는 매정하게 제 길을 쭉 간다. 작가는 허둥지둥 그의 뒤를 쫓아간다. 그런데 신기하다. 결과적으로 보면 대개 그가 선택한 길이 그에게 더 어울린다.

요즘 드라마들은, 시청자의 의견을 반영하여 미리 정해둔 결론을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공식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등 적극적인 방법으로 개입한다. “철수와 영희를 꼭 연결시켜주세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 영희의 진정한 사랑은 철수가 아니라 길동이란 말이에요.” 철수와 길동이의 팬들은 서로를 째려본다. 마음을 못 정하고 갈팡질팡하는 영희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기도 한다. 시청자가 미디어의 일방적인 수용자 입장에서 벗어나(벗어났다고 착각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미디어 제작자와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는 모습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대중들이 원하는 결말이 일반적으로 ‘해피엔딩’ 이라는 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른바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결말부분에 있다는 분석을 들은 적이 있다. ‘근대 이전의 소설’과 ‘근대 이후의 소설’을 비교해 봐도 이 차이는 명확하다. 착한 이는 보답을 받고 나쁜 놈은 패가망신한다는 권선징악의 교훈이야말로 전근대소설의 대표적인 특징이 아니던가.

그럼, ‘해피엔딩’의 반대말은 ‘새드엔딩’ 일까? 글쎄,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해피엔딩이 대중의 손쉬운 판타지라면, 비극 또한 현실과는 거리가 먼 강렬한 판타지라는 것을 저 수많은 뮤직비디오의 내러티브들이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 맞아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불치병으로 죽는 뮤직비디오 속의 인물들은, 비장하고 간결하게 비극을 완성한다. 남 얘기 할 때가 아니다. 고백하자면, 드라마나 뮤직비디오의 시청자일 때 나 역시 분명하고 딱 떨어지는 결론을 원하고 ‘열린 결말’에 괜히 힘이 빠지곤 하니까 말이다.

우리는 왜 그토록 극적인 결말을 희구하는가. 아마도 현실이 밋밋하고 구질구질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인생이 화끈한 ‘한 방’이 아니라 한없이 이어진 낮은 언덕배기들을 넘는 일의 연속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판타지 속에서만이라도 명료한 결론의 느낌을 대신 맛보고 싶은 거다.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는 현실의 시간에서 벗어나 확실하게 분절된 시간의 매듭을 느끼고, 빈틈없이 완결된 구조 속에서 내 생의 불완전한 여백을 잠시 잊어버리고 싶은 거다.

재미없지만, 다시 소설쓰기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 보자. 이상한 일이 하나 있다.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게 된 소설 속 인물들은, 쉽게 행복해지거나 쉽게 불행해지지 않는다. 제 삶에 대해 절대자(작가)가 대신해서 인위적인 결정을 내리려고 하면, 온 힘을 다해 거부한다. 그들은 그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 있으려고 한다. 행복이나 불행에 꺾이지 않고 제 길을 가려고 한다. 시청자로서의 우리가 아니라, 현실에서의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는 것처럼….

정이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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