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성군 백양사에서 도난당한 <아미타영산회상도>가 서울 종로구 원서동 한국불교미술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이 불화가 도난되기 전 백양사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뒤에 걸려 있는 모습.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백양사 제공
[문화재가 털린다] (상) 도난, 불법유통실태 진단
훔치거나 도굴한 문화재가 박물관에 팔려가 버젓이 전시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도굴꾼이 훔친 문화재는 몇 사람의 중간상을 거치면 깨끗이 ‘세탁’되고, 암시장은 물론 공신력 있는 박물관에까지 ‘입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부조리 탓에 전국 곳곳의 문화재가 지금도 털리고 있다. <한겨레>는 문화재 도굴에서 세탁, 유통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해, 귀중한 문화재들이 겪는 수난을 세 차례에 걸쳐 고발한다.
조계종 5대 총림의 하나인 전남 장성군 백양사(주지 두백)는 지난달 말 서울 종로구 원서동 한국불교미술박물관 권대성 관장을 장물취득 혐의로 고발했다. 유서깊은 사찰이 불교 문화재를 다루는 박물관과 진흙탕 싸움에 휘말린 내막은 뭘까?
싸움의 불씨는 1994년 백양사 극락보전에서 도둑맞은 탱화 <아미타영산회상도>(1775년 제작)였다. 백양사 쪽은 이 탱화가 한국불교미술박물관에 <아미타극락회상도>라는 이름으로 전시된 것을 지난 4월 확인한 뒤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법에 호소하고 나섰다. 백약사 성보박물관 김문경 학예사는 “박물관에 걸린 탱화의 ‘화기’(그림 밑에 씌어진 글귀)를 보면 백양사가 잃어버린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 박물관 쪽은 “95년 서울 인사동 고미술상에서 1억2천만원에 합법적으로 구입했다”고 버티고 있다. 백양사는 이 밖에 말사인 나주 불회사의 <동종>(92년 도난)을 비롯해 해남 대흥사의 <사천왕도>(78년 도난), 통도사의 말사인 창녕 관룡사의 <영산회상도>(92년 도난)도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며 이들 사찰과 연대해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암시장경매등 거쳐 ‘세탁’ 소유권 싸고 법정다툼 속출
서울역사박물관(옛 서울시립박물관)도 소장품인 경기문화재 제110호 <김중만장군공신록권>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최근 언양 김 문중과 다퉜다. 역시 도난된 문화재 때문이었다.
99년 도굴꾼 ㅂ아무개씨 등은 경기 안성시 토현리의 언양 김씨 재실에서 이 <공신록권>을 훔쳤고, 이 책은 그 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2000년 말 1천만원에 서울역사박물관에 넘어갔다. 그러나 2001년 ㅂ씨가 경찰에 붙잡혀 <공신록권>을 훔친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반환을 요구하는 언양 김씨 문중과 서울역사박물관은 몇차례 공방 끝에 <공신록권>은 현재 ‘언양 김씨 언성군파 기증’이라는 형식으로 박물관 소장품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문화재청 홈페이지엔 소재지가 ‘경기 안성시 토현리 언양 김씨 언성군파 종친회’라고 소개돼 있다. 국보급 문화재로, 지난해 4월 대구의 한 경매시장에 나왔다가 현재 경기도박물관, 청주고인쇄박물관 등에 흩어져 있는 <송조표전총류>도 도난품인 게 확실해 보인다. 본래 10권이 한묶음인 <송조표전총류>는 암거래 되는 과정에서 여러 다발로 분책됐다. 이 가운데 일부는 3억5천만원의 입찰가로 경매에 부쳐졌다가 박물관 등으로 흘러들어갔다. 10권 한묶음 <송조표전총류> 분책돼 암거래되기도 문화재청 관계자는 “경매업자는 경주 양동마을의 ㅇ아무개씨가 책을 내놨다고 했지만 책이 쪼개진 정황 등을 볼 때 도난품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고서 전문가들은 〈송조표전총류〉가 워낙 고가인 국보급 문화재여서 거래를 원활하게 하고자 분책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도난·도굴된 문화재가 박물관에 일단 들어오면 본래 주인에게 돌아오는 일은 더욱 힘들어진다. ‘박물관’이라는 공신력에 기대어 ‘선의취득’을 주장하면 책임을 따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경기 가평군 현등사가 삼성 호암박물관에 소장된 ‘사리구’(부처 진신사리와 사리함)를 놓고 삼성문화재단과 벌이고 있는 소송은 앞으로 문화재의 ‘선의취득’ 범위와 소유권 여부를 판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등사는 80년대 초에 잃어버린 사리구가 호암박물관에 소장된 것을 발견하고 지난해 반환청구 소송을 냈다. 사리구를 훔친 범인까지 밝혀졌으나 삼성 쪽은 선의취득을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29일 결심 공판을 앞둔 이 재판의 결과가 주목된다.
이유주현 이정국 노형석 조기원 기자 edigna@hani.co.kr
전남 장성군 백양사에서 도난당한 <아미타영산회상도>가 서울 종로구 원서동 한국불교미술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백양사 제공
99년 도굴꾼 ㅂ아무개씨 등은 경기 안성시 토현리의 언양 김씨 재실에서 이 <공신록권>을 훔쳤고, 이 책은 그 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2000년 말 1천만원에 서울역사박물관에 넘어갔다. 그러나 2001년 ㅂ씨가 경찰에 붙잡혀 <공신록권>을 훔친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반환을 요구하는 언양 김씨 문중과 서울역사박물관은 몇차례 공방 끝에 <공신록권>은 현재 ‘언양 김씨 언성군파 기증’이라는 형식으로 박물관 소장품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문화재청 홈페이지엔 소재지가 ‘경기 안성시 토현리 언양 김씨 언성군파 종친회’라고 소개돼 있다. 국보급 문화재로, 지난해 4월 대구의 한 경매시장에 나왔다가 현재 경기도박물관, 청주고인쇄박물관 등에 흩어져 있는 <송조표전총류>도 도난품인 게 확실해 보인다. 본래 10권이 한묶음인 <송조표전총류>는 암거래 되는 과정에서 여러 다발로 분책됐다. 이 가운데 일부는 3억5천만원의 입찰가로 경매에 부쳐졌다가 박물관 등으로 흘러들어갔다. 10권 한묶음 <송조표전총류> 분책돼 암거래되기도 문화재청 관계자는 “경매업자는 경주 양동마을의 ㅇ아무개씨가 책을 내놨다고 했지만 책이 쪼개진 정황 등을 볼 때 도난품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고서 전문가들은 〈송조표전총류〉가 워낙 고가인 국보급 문화재여서 거래를 원활하게 하고자 분책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도난·도굴된 문화재가 박물관에 일단 들어오면 본래 주인에게 돌아오는 일은 더욱 힘들어진다. ‘박물관’이라는 공신력에 기대어 ‘선의취득’을 주장하면 책임을 따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경기 가평군 현등사가 삼성 호암박물관에 소장된 ‘사리구’(부처 진신사리와 사리함)를 놓고 삼성문화재단과 벌이고 있는 소송은 앞으로 문화재의 ‘선의취득’ 범위와 소유권 여부를 판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등사는 80년대 초에 잃어버린 사리구가 호암박물관에 소장된 것을 발견하고 지난해 반환청구 소송을 냈다. 사리구를 훔친 범인까지 밝혀졌으나 삼성 쪽은 선의취득을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29일 결심 공판을 앞둔 이 재판의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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