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이름난 정치인과 학자들을 여럿 배출한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은 문화재의 ‘보고’로 문화재 털이범들의 오랜 표적이 돼왔다. 이 마을에 있는 성리학자 이언적(1491∼1553) 집안 종가의 일부인 ‘무첨당’(보물 411호)에서도 고서적 등을 여러차례 도난당했다. 경주시청 제공
‘차떼기’로 훔쳐가도 뭘 잃었는지조차 깜깜
[문화재가 털린다](중)도난, 불법유통실태 진단
“지금은 귀한 물건이 거의 없을 거예요. 차로 한 가득 쓸어간 적도 있으니 남아나질 않지요.”
손덕익(56) 양동마을 보존위원장은 혀를 찼다.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 189호로 지정되어있는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은 문화재가 많기로 소문난 동네다.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집성촌을 형성한 이 마을은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물게, 옛 모습이 500년 가까이 보존된 곳이기도 하다. 조선 성종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에 오른 손소, 중종 때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 등 이름난 학자와 정치인 여럿이 이 마을에서 나왔다. 인근 80리가 두 가문 땅이었을 만큼 재력도 갖춘 동네였다. 지금도 마을 안에 있는 서양식 건물이라고는 교회 하나가 전부이며, 기와집이 대부분으로 현재 150여가구가 300여채에 머물고 있다. 국보 <통감속편>을 비롯해 <손소영정> 등 보물 4점, 중요민속자료 13점, 유형문화재 2점 등이 모두 21점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경북대학교가 2003년 이 마을을 조사했을 때도 지정·비지정 문화재 1만1998점이 남아 있었다.
도굴꾼들이 노리는 것은 노인들이 외롭게 지키고 있는 종가집이다. 차를 대기시켜 놓고 한 가득 고서들을 훔쳐가는 ‘차떼기 절도’를 당한 적도 있다고 손 위원장은 말했다. “어떤 집에서는 도둑들이 차를 몰다가 집 우물에 부딪혀, 훔치려던 책이 우물로 우수수 떨어져 버리기도 했습니다.” 손씨 집안 종가인 서백당과 이씨 집안 종가인 수졸당은 벌써 여러차례 되풀이해 털렸다.
현재 교도소 수감 중인 도굴범 ㅅ아무개씨는 “양동마을을 여러번 다녀왔다”며 “실제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은 사랑채나 재실 같은 곳은 경비가 너무 허술해 훔치기가 쉽다”고 말했다. 대구나 경주 일대에서 ‘물건’이 돌면, 양동에서 잃어버린 것 아니냐는 문의 전화가 걸려올 정도다.
예전보다 덜하다지만 요즘에도 도둑은 많다. 지난 2003년에는 고택 6곳의 서적 등 각종 유물 1천여점을 한꺼번에 쓸어갔다. 올해 초에도 서백당에 도둑이 들어, 병풍과 고서를 훔쳐갔다. 서백당 주인인 손성훈(52)씨는 “경주경찰서에 신고하고, 내 돈으로 현상금 1천만원을 내걸고 있는데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건’이 워낙 많다보니, 양동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손성훈씨는 “아버님이 70년대에 따로 목록을 만들긴 했는데, 모든 집안이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손덕익 보전위원장은 “서너해 전에 산소 3곳 들어가는 입구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며 “우리도 산소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양동마을이 문화재 도굴꾼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집에 있는 문화재 목록을 작성하고 귀중한 문화재는 서적이나 병풍은 물론 묘소의 석상 등도 사진을 모두 찍어 두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신태 문화재청 단속반장은 “사진이 남아있지 않은 경우 문화재를 되찾을 확률은 거의 사라진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도둑 때문에 양동마을 사람들의 불신도 커진다. 몇해 전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100회 특집방송을 양동마을에서 할 예정이니 집에 있는 고서나 관복 등 값어치 있는 물건을 보여달라는 섭외가 들어왔다. 정작 나온 물건은 소달구지 따위 뿐이었다고 한다. 결국 주민들이 ‘물건’ 다운 ‘물건’을 보여주지 않자 방송사는 양동마을 방송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손 위원장은 “주민들이 보여주면 잃어버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경주시에서 유물 수장고와 전시실을 만들려고 하는데 모두들 ‘아무도 물건을 안 내놓을 것 같다’고 수군거리곤 한다”고 말했다.
경주/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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