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860곳 합법 매매업소 활용 ‘세탁’
[문화재가 털린다](중)도난, 불법유통실태 진단
도굴꾼 교육·범행지시 ‘암시장 움직이는 손’
도난된 문화재가 ‘세탁’되고 팔리는 암시장에는 전문가 뺨치는 한학·고미술의 ‘고수’들과 합법적인 문화재 거래상까지 가담한 전국적인 유통망이 자리잡고 있다.
이 유통망의 핵심고리는 ‘상선’ 또는 ‘나까마’라고 불리는 장물아비들이다. 이들은 문화재털이범들에게 ‘물건’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르치기도 하고, 직접 고택이나 사찰을 찾아 고서적 등 문화재를 수집하는 척하면서 정보를 모은 뒤 이를 토대로 절도나 도굴을 지시하기도 한다. 이렇게 설정된 목표물을 훔치는 ‘작업’이 끝나면 문화재털이범들은 상선을 찾아가 1차 ‘감정’을 받는다. 도자기 하면 서울 장안평의 ㅂ아무개씨, 불서 하면 대전의 ㅈ아무개씨, 서화 하면 대구의 ㄱ아무개씨 등으로, 상선들은 전공 분야까지 세분돼 있다. 이들은 비록 ‘음지’에서 활동하지만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해, 대부분 문화재위원 뺨치는 실력을 갖고 있다는 게 문화재청 관계자들이나 구속된 전문털이범들의 얘기다.
하지만 전문털이범들이 상선에게 장물을 넘길 때는 감정가의 10분의 1도 받기 힘들다. 가령 유명한 상선인 ㅈ씨가 1998년 8월 도굴범 ㅅ아무개씨에게서 산 〈능엄경언해활자본〉은 보물급 문화재인데도 2300만원에 거래됐다. 지방문화재인 〈김중만장군공신록권〉의 감정가가 1억원 가량에 이르는 것과 비교할 때 터무니 없이 싼 가격이다.
전문털이범과 상선 사이의 1차 거래가 끝나면 본격적인 ‘돌리기’가 시작된다. 일단 훔친 사람의 손을 떠난 만큼 이때부터 이른바 ‘선의취득’의 명분이 쌓이기 시작한다. 돌리기 과정에는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860여개의 합법적인 ‘문화재매매업소’도 활용된다. 지난 2001년 장물을 취급하다 붙잡힌 대구의 골동품 매매상 ㄱ아무개씨도 문화재청에 신고한 합법적인 ‘매매업소’를 운영중이었다. 강신태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은 “도난 문화재를 소유한 사람이 ‘합법적인 매매업소에서 샀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따지고 나오면 물증을 잡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사찰의 불상 안에 들어있던 ‘복장유물’은 도난품 내역조차 파악이 안돼 도난품임을 입증하기도 곤란한 경우가 많다. 도굴꾼들이 복장유물을 턴 뒤 유물 내역이 기록된 발원문을 꺼내 태워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복장유물들은 문화재청의 ‘도난 문화재 목록’에도 오르지 않아 최후의 방어막조차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을 거쳐 세탁되는 문화재도 있다. 2000년 1월 충남 논산시 익안대군(조선 태조의 셋째 아들) 영정각에서 도난당한 〈익안대군 영정〉(충남 지방지정문화재 329호)은 일본으로 밀반출된 뒤 현지에서 정상적인 유통 과정을 거친 것으로 꾸며져 같은해 7월 김해세관을 통해 재반입됐다. 고미술상들은 “한국 수집가들은 서화·영정을, 일본 수집가들은 불화를 탐내기 때문에 〈익안대군 영정〉은 비싼 값을 받기 위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가 국외로 나갈 때와 달리 들여오는 과정에선 반입 사실을 기록만 해둘 뿐 조사를 철저히 하지 않는다는 허점을 노린 것이다.
전국의 문화재 도굴범과 유통 조직은 지난 2001년 검찰의 대대적인 단속 이후 위축된 듯했지만, 최근 도난 건수가 급증하는 등 암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강신태 반장은 “외환위기 전에는 전국의 유통망이 손금 보듯 빤하게 보였지만 그 뒤로 ‘평범한 도둑’들까지 문화재 쪽으로 눈길을 돌려 이제는 누가 활동하는지 파악하기도 힘들어졌다”고 전했다. 이정국 전진식 이유주현 기자 jglee@hani.co.kr
전국의 문화재 도굴범과 유통 조직은 지난 2001년 검찰의 대대적인 단속 이후 위축된 듯했지만, 최근 도난 건수가 급증하는 등 암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강신태 반장은 “외환위기 전에는 전국의 유통망이 손금 보듯 빤하게 보였지만 그 뒤로 ‘평범한 도둑’들까지 문화재 쪽으로 눈길을 돌려 이제는 누가 활동하는지 파악하기도 힘들어졌다”고 전했다. 이정국 전진식 이유주현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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