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안대군 영정 (충남 지방지정문화재 329호)
혀 내두르게 하는 털이 수법
[문화재가 털린다](중)도난, 불법유통실태 진단
지난 1999년 10월 등산복 차림의 세 남자가 강원 원주시 ‘치악박물관’을 찾았다. 평범한 관람객처럼 보이던 이들은 제1전시실에 이르자 태도가 돌변했다. 한 명은 입구에서 망을 보고 다른 두 명은 전시돼 있던 〈청화백자매죽문연적〉을 미리 준비한 똑같은 모양의 ‘가짜 연적’으로 바꿔치기 했다. ‘작업’이 끝나자 이들은 유유히 사라졌다. 박물관 쪽은 2년 뒤 ‘3인조 문화재 전문 털이범’이 붙잡혀 범행을 자백하기 전까지 도난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2000년 9월 전남 해남 대흥사 성보박물관에서도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직원들이 점심을 먹고 돌아와 보니 처음 보는 대형 자물쇠가 박물관 입구에 채워져 있었다. 부랴부랴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가 보니 〈무언동자경〉, 〈금니묘법연화경〉, 〈은자묘법연화경〉 등 고서적 13점이 보이지 않았다. 급히 신고했지만 범인들은 멀리 도망친 뒤였다. 범인들은 3~4차례 사전 답사를 통해 직원들이 점심 시간에 자물쇠를 채워놓고 자리를 비운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점심 시간에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가 유리절단용 칼로 진열창을 잘라내 책을 훔친 뒤 다시 자물쇠를 채워놓아 도망갈 시간을 벌었던 것이다.
고미술업계에서 ‘최고’라고 알려진 도굴꾼 ㅅ아무개(45)씨는 〈한겨레〉 기자와 만나 “보통 2~3인조로 움직이며 한명은 망을 보고 나머지가 ‘작업’을 한다”며 “토불은 망치를 들고 부숴야 하지만 목불은 뚜껑만 열면 되기 때문에 드라이버로 뚜껑을 열어 불상 안의 ‘복장유물’을 훔치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개를 키우는 사찰을 털 때 범행 며칠 전 쥐약을 놓아 개를 없애는 용의주도함을 보이기도 했다.
도굴범들은 ‘전문적 지식’과 ‘미세한 감각’도 갖추고 있다. 형사정책연구원 신의기 연구경영국장은 “이름난 가문의 족보를 입수해 묘를 직접 찾아나서거나 해박한 풍수지리 지식으로 명당을 알아내 보물이 숨어있을 만한 고분을 찾기도 한다”며 “진정한 ‘고수’들은 쇠꼬챙이로 땅을 찔러 소리와 촉감만으로 땅밑 유물이 금속인지 자기인지 판명해 낸다”고 전했다.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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