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법에 규정 없고, 70년 유네스코협약 ‘제정 이전’
“반환된 조선왕조 실록이 약탈된 문화재인지 판단내릴 수 없다”
일제에 의해 강탈돼 일본으로 불법반출되었다가 불교계를 중심으로 한 민간의 환수노력 끝에 93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실록)에 대해 문화재청이 ‘약탈 문화재인지 판단할 수 없다’는 해석을 내렸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지난 17일 문화재청의 국정감사 때 손봉숙 민주당 의원의 반환된 실록의 약탈문화재 여부 및 약탈문화재 정의를 묻는 질문에 “서면으로 답하겠다”고 말한 뒤 19일께 손 의원에게 공식 답변서를 보냈다. 답변서의 요지는 반환된 실록이 약탈 문화재 인지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들었다. 첫째,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약탈문화재의 개념 정의와 약탈문화재 언급 규정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 개념을 규정한 유네스코의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유네스코 협약)은 조약이 채택된 1970년대 이전은 소급효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왕조실록이 일제강점기인 1913년 도쿄제국대학으로 이관하였음을 고려할 때 동 유네스코협약의 적용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실록 환수위 “황당하다” ↔ 문화재청 “약탈 문화재 아니라는 건 아니다”
실록 환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환수위) 간사 혜문(봉선사 총무과장) 스님은 “문화재청의 해석에 당혹감을 느꼈다”며 “문화재청의 해석에 따르면 일제시대 때 강탈된 문화재들은 전부 약탈문화재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인데 이것을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또한 스님은 “현재 환수 활동이 적극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왕실의궤의 반환에도 큰 차질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은 파문을 우려한 듯 조심하는 자세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실록이 약탈문화재가 아니라고 해석한 것이 아니라 단지 현행법상 판단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라며 “일제가 강탈해간 것이야 온 국민이 아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손봉숙 의원실의 이현진 비서관은 “답변서를 받고 현행 문화재관리법에 허점이 있다고 생각되어 개정안을 제출을 준비중에 있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협약의 맹점 있어 개선안 찾고 있다”
한국유네스코위원회 김귀배 문화팀장은 “협약의 여러가지 맹점들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며 “문화재청에서 근거로 삼은 유네스코협약은 현재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이런 문제들 때문에 2차 대전중에 불법 이관된 문화재들을 반환 받을 수 있는 협약의 개정 작업을 하고 있고, 지난 7월에도 정부간 위원회가 열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2차대전 승전국을 중심으로 한 강대국들의 반발이 너무 거세 협상이 정체 상태에 있다”고 덧붙였다.
● 문화재의 불법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Means of Prohibiting and Preventing the Illicit Import, Export and Transfer of Ownership of Cultural Property)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 |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