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판사들의 법정태도와 진행 등에서 ‘가장 개선해야 할 것’을 물었더니 ‘재판 중에 볼펜을 돌리거나 머리를 만지는 등의 불필요한 동작’(41.7%)이 단연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부산지법이 최근 시민들을 상대로 한 조사 결과다. 학교에서 볼펜 돌리기가 유행한 지 30년이 넘었으니, 이제 그 동호인이 10대부터 50대까지 걸쳐 있는 셈이다. 엄숙한 법정에서도 묘기가 난무하는 것을 보면, 단순한 습관을 넘어서 재미가 만만치 않음이 분명하다.
재미는 ‘체내에서 엔돌핀이 생성되면서 뇌가 기분 좋게 느끼는 것’이다. 어떨 때 재미가 생길까? 미국의 게임 디자이너인 라프 코스터는 <재미이론>(디지털미디어리서치 펴냄)에서 ‘문제를 정신적으로 정복할 때’라고 한다. 압박이나 압력이 없는 환경에서 학습하는 것이 재미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컴퓨터 게임을 하는 이들은 이밖에도 여러 경험을 한다. 우선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 심미적 즐거움을 얻는다. 주어진 과제를 물리적으로 잘 정복할 경우엔 육체적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또 게임이 요구하는 ‘다양한 사회적 위치 책략’에서 성취를 이루면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것들을 모두 포괄해 재미라고 한다.
재미는 의식적으로 찾을수록 큰 대가를 요구한다. 사람의 감각은 끊임없이 새롭고 강렬한 것을 찾으며, 이에 따라 재미의 한계비용도 눈덩이처럼 커진다. 매일 30분씩 컴퓨터 게임을 하는 사람은 항상 비슷하게 재미를 느끼는 반면, 자주 밤을 샐 경우엔 신체적·정신적 피로가 커지는 것에 반비례해 재미가 줄어들고 결국 재미의 원천마저 고갈된다. 많은 컴퓨터 게임은 이에 대응해 폭력과 섹스 등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요소를 강화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진부해진다. 재미의 악순환이다.
방학이 되면 많은 학부모가 컴퓨터 게임을 놓고 자녀들과 갈등을 겪는다. 사이버 중독자는 갈수록 많아지고 게임 내용은 더 거칠어지니 그럴 만도 하다. 부모로선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이 사용시간과 프로그램 통제다. 물론 자녀의 반발을 사기 쉬운 데다 일일이 감시하기도 쉽지 않다. 컴퓨터 게임은 마약보다는 술과 비슷하다. 알코올 중독이 술 자체 속성보다 사람에 더 큰 원인이 있듯이 컴퓨터 게임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재미를 추구하는 본능을 갖게 된 것은 생존과 자기실현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적당한 재미는 삶의 질을 높이고, 풍부해진 삶은 새로운 재미‘꺼리’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컴퓨터 게임이 그렇게 되려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야 한다. 현실의 건강한 부분을 반영하는 게임만이 실제 삶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그런 게임을 골라서 하도록 적절하게 개입해야 한다. 곧 자녀가 재미와 함께 삶의 의미를 찾도록 자율성을 키우는 것이 해법이다. 여기서 실패하면 컴퓨터 게임은 자녀를 퇴보시킬 수 있다. 재미를 뜻하는 영어 단어 ‘펀’(fun)은 게일어 ‘즐거움’(fonn)과 중세 영어 ‘바보’(fonne)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예로부터 무조건의 재미는 경계 대상이었던 셈이다. 논설위원 jkim@hani.co.kr
인간이 재미를 추구하는 본능을 갖게 된 것은 생존과 자기실현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적당한 재미는 삶의 질을 높이고, 풍부해진 삶은 새로운 재미‘꺼리’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컴퓨터 게임이 그렇게 되려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야 한다. 현실의 건강한 부분을 반영하는 게임만이 실제 삶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그런 게임을 골라서 하도록 적절하게 개입해야 한다. 곧 자녀가 재미와 함께 삶의 의미를 찾도록 자율성을 키우는 것이 해법이다. 여기서 실패하면 컴퓨터 게임은 자녀를 퇴보시킬 수 있다. 재미를 뜻하는 영어 단어 ‘펀’(fun)은 게일어 ‘즐거움’(fonn)과 중세 영어 ‘바보’(fonne)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예로부터 무조건의 재미는 경계 대상이었던 셈이다.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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