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얼마 전 붙잡힌 강화 총기탈취범이 ‘헤어진 애인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수사당국 발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자신이 파멸해가는 모습을 보고 옛 애인이 고통받도록 하려면 체포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하는데, 과연 그랬을지 의문이다. 우리 사회에 그와 같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도 궁금하다. 아무 원한도 없는 초병을 살해하고 총을 뺐을 정도면 정상인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아무런 낌새도 눈치채지 못했다.
동정심이나 죄 의식을 느낄 줄 모르며 이기적 목적만을 추구하는 인격장애자를 사이코패스(psychopath)라고 한다. 규모는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하지만 ‘심각하고 폭력적인 범죄’의 절반 가까이를 저지른다. 전체 수감자 가운데서도 15%가 사이코패스다. 북미 지역의 연구 결과이지만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사이코패스 여부를 판정하는 표준 도구(PCR:SV)도 개발돼 있다. 인간관계, 감정, 생활방식, 반사회성 등 네 영역마다 세 항목씩, 모두 12항목의 진단표에 점수를 매겨 합산하는 방식이다. 가장 중요한 영역은 감정인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동정심이 없다’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항목으로 돼 있다. 세 항목 모두에 분명하게 해당되면 사이코패스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감정과 인간관계 영역에서 점수가 높은 사람은 ‘조종사 유형’의 사이코패스다. 이들은 매력으로 주위 사람을 홀려 속이고 조종한다. 감정과 생활방식, 반사회성에서 점수가 높으면 ’마초 유형’ 사이코패스가 된다. 이들은 공격적이고 난폭하고 말보다 행동이 앞선다. 네 영역 모두 점수가 높은 경우는 ‘고전적 유형’의 사이코패스다.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랜덤하우스 펴냄)는 기업내 사이코패스가 늘고 있다고 말한다. 고위직에서 더 그렇다. 이사로 승진할 가능성이 높은 200명가량을 조사해보니 3.5%가 사이코패스로 나타났다고 한다. ‘매력적이고 지적이고 모험을 좋아하고 공격적이며 충동적이다. 세상을 사는 게 지루해서 늘 아슬아슬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이코패스에 일반적인 성격이다. 그런데 극심한 경쟁과 변화 압력에 시달리는 기업들은 이런 사람을 필요로 한다. 채용한 뒤에는 조직과 프로젝트, 크게는 회사 전체를 거덜낼 때까지 일을 맡긴다.
자본주의는 ‘합리적 개인’을 기본 구성단위로 한다. 개인은 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곧, 이기심은 자본주의의 기초다. 그러나 이기심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스스로의 인격을 파괴한다. 자본주의 원리에 철저할수록 큰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커지지만 그만큼 비인간적으로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인간형의 본질적 모순이다. 기업내 사이코패스의 증가는 그 연장선에 있다. 기업이 잠재 범죄자인 이들을 유용한 인간형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더 심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모든 인간형이 그렇듯이, 사이코패스 또한 절반은 선천적이고 절반은 후천적이다. 감시와 배제, 대증요법만으로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회 핵심 부분에서 사이코패스가 늘어나는 현실을 가볍게 넘겨선 안 된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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