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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정책 시시비비 가려야 할 지식인
‘총체적 진실’ 바탕 대운하 다루라

등록 2008-01-18 19:24수정 2008-01-21 14:22

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아돌프 아이히만은 2차대전 때 독일에서 강제수용소로 유대인을 이송하는 일을 총괄한 나치의 주요 관료였다. 그는 1962년 이스라엘 전범재판에서, 자신은 상부 명령을 충실히 따랐을 뿐 유태인에 대한 증오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재판을 본 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75)는 ‘악은 평범한 것’이라고 규정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회 위계구조 속에서 개인 책임이 실종됨에 따라 우리 시대가 도덕적 파산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아이히만 문제’다.

위계구조의 중간에 있는 사람만이 악의 집행자가 되는 건 아니다. 명령을 내리는 이에겐 ‘역아이히만 문제’가 발생한다. 이라크 침공 결정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와 영국의 정보기관은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관련한 모호한 정보를 정부와 정치권에 유포했다. 정보는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기정 사실로 굳어져갔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결국 침공 결정을 내렸다. 이후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지 않았음이 밝혀지자 두 사람은 ‘당시 정보로는 그런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강변했다.

이런 도덕적 파산에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지식인의 책임이 크다. 판검사 등 법조인이 특정 행동에 대한 책임을 따진다면, 지식인은 사회적 행동 일반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책임을 갖는다. 자신이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할 수도 있었던 일에 대한 책임이다. 윤리학에서는 이를 소극적 책임이라고 한다. 문제는 세상이 복잡해지고 도덕적 기준 또한 높아지면서 이 책임을 이행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데 있다.

사회인식론 전문가인 스티븐 풀러 영국 워웍대학 교수는 〈지식인〉(사이언스북스 펴냄)에서, 지식인은 부분적 합리성이 아닌 총체적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총체적 진실에 접근하려면, 의견 차이를 해소하고 정설을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목소리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새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희미한 가능성만으로도 조사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지식인들이 이런 역할에 충실했다면 이라크 침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식인은 자율성과 자유로운 탐구를 생명으로 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행동과 지식의 필수불가결한 관련성을 들어 지식인을 이용한다. 많은 지식인 또한 정치인의 주장과 총제적 진실이 크게 차이가 나는 줄 알면서도 그들과 결탁한다. 정치인의 정책이 잘못될 가능성이 클수록 지식인이 할일은 커진다. 지식인은 권력을 얻는 대신 정치인이 져야 할 책임을 떠안는다.

새 정권 출범을 앞두고 많은 지식인이 권력자 주변에 모여들고 있다. 민주 사회에서 지식인이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 참여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그 과정에서 총체적 진실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지식인이 아니다. 오히려 소극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도덕적 파산에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한 시금석이 있다.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국민은 반대하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쪽은 밀어붙이려 한다. 결국 야심 있는 지식인이 프로젝트를 다듬고 공론화하는 몫을 맡게 될 것이다. 그는 과연 총체적 진실을 추구할까.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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