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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삶으로 죽음을 이기는 문화

등록 2008-10-17 19:47

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

“죽음은 삶의 끝에 있지 않습니다. 언제나 삶과 함께합니다.”

실감나는 말이었다. 젊은 시절 사고를 당해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을 때다.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죽음이 바로 옆에 다가와 있었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말 치고는 심오했다. 알고 보니 생명보험 회사의 광고였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죽음에 대한 태도는 문화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난다. 전통적으로 서양에서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길은 천당에 간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내세에 대한 아무런 확신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해 왔다고 <죽음이란 무엇인가>(도서출판 창 펴냄)는 말한다.

서양에서는 죽음과 관련해 세 가지 해석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첫째는 신이 결정한 인간의 운명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 최초의 문자 기록을 남긴 메소포타미아인의 경우가 그 출발점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운명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체득한 지혜가 삶을 그만큼 풍부하게 한다고 여겼다. 둘째는 죽음의 왕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믿음이다. 이집트인은 나일강이 봄마다 홍수로 자신을 쏟음으로써 사막을 비옥하게 바꿔 곡식을 생산하듯이 사람도 죽음을 통해서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봤다. 셋째는 각자 행한 선악에 따라 죽은 뒤 심판을 받는다는 생각이다. 페르시아인은 각자 삶의 질에 따라 완전히 다른 운명이 결정된다는 심판 사상을 처음으로 명료하게 제시했다. 이 세 해석은 이후 여러 종교와 문화에서 조금씩 모습을 바꿔 되풀이된다.

우리를 포함한 여러 동양인들의 문화는 이와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삶과 죽음을 나눠 보지 않는 것이다. 유가는 죽음 자체의 의미나 죽고 난 뒤에 다른 세계에 대해서 거의 관심이 없었다. 공자는 “삶을 모르고서야 어떻게 죽음을 알겠느냐”고 했다. 그는 귀와 신에게 제사 드릴 것을 여러 곳에서 말하지만, 근본 뜻은 이런 의식을 통해 사람들의 도덕 심성을 가꾸게 하려는 데 있었다. 삶의 일과 죽음의 일이 다르지 않다는 이런 태도는 존재하는 세계의 우위성에 대한 믿음과 일맥상통한다. 영생·영원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현세에 충실함으로써 더 잘 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불교 역시 죽음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삶에도 죽음에도 번민하지 않는 생명에 대한 추구다. 현실의 냉철한 자각을 통해 한층 높은 차원의 진실을 체득하면 죽음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극복된다는 입장이다. 열반·해탈이 그런 상태다. 죽음은 삶의 연장선에 있는 하나의 추이일 뿐이며, 죽음을 내포하는 삶의 진실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죽음을 이겨내는 것이 된다. 생즉사 사즉생의 논리다.


우리 문화는 죽음을 삶의 일부로 보고 삶에 초점을 맞추는 데 익숙하다. 이런 현실적 태도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삶을 살도록 뒷받침한다. 세상이 어떻든, 죽은 왕은 산 거지보다 못하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은 법이다. 연예인 등의 연이은 자살이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자살은 애초부터 우리 문화와 거리가 있다. 죽을 마음이 있으면 그 절실함으로 더 열심히 살 일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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