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
먹을거리 파동이 유난했던 한해였다. 미국산 쇠고기와 중국발 멜라민이라는 두 태풍 외에도 집단 식중독 사고가 이어졌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한마디로 먹을거리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구조가 정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동 때마다 갖가지 대책이 쏟아지지만 곧 유야무야된다. 지구촌 전체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약간의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다.
먹을거리의 복합적인 질은 맛과 건강의 문제에서부터 환경·생태계 및 자연의 리듬에 대한 존경심,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까지 넓은 범위를 아우른다고 <슬로푸드, 맛있는 혁명>(이후 펴냄)은 강조한다. 하지만 과학·기술·산업과 자본주의 경제 등 ‘침략적이면서 침투성 있는 네 개의 엔진’은 지구의 평형을 깨뜨리면서 건강한 식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지은이인 카를로 페트리니(1949~)가 제시하는 대안은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음식’이다. 그는 1980년대에 슬로푸드 운동을 시작해 지금도 주도하고 있다.
좋은 음식은 원재료의 특징을 최대한 존중하는 자연성을 띠면서 특정한 시공간적 특성과 문화적 특성까지 포함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음식은 맛이 좋고 마음을 풍족하게 한다. 산업적 형태로 만들어지는 거의 모든 식품은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깨끗한 음식은 지구와 환경을 존중하고 오염시키지 않으며, 식탁에 오르기까지 자연자원을 낭비하거나 오용하지 않는다. 이런 음식은 그럼으로써 지속가능성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역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식품이 먼 곳에서 오는 식품보다 더 지속가능하고 환경친화적일 수 있다. 공정함이란 식량·식품 생산에서 사회적 정의, 노동자의 그들의 노하우, 시골의 풍습과 농촌 삶에 대한 존중, 노동에 걸맞은 보수, 훌륭한 생산물에 대한 만족, 소농의 가치에 대한 명확한 재평가 등을 뜻한다. 공정함은 사회·경제적 지속가능성과 결합한다.
수천년간 인류가 발전시켜온 음식 및 농업관행에 관한 지식과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서는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음식이 만들어질 수 없다. 새 기술은 그 위에 접목된다. 그리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가 좁아져 궁극적으로 생산공동체와 먹을거리공동체가 하나로 결합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이미 이런 상황과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농촌공동체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의 단장인 도법 스님은 2004년 제주도를 시작으로 5년 가까이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걸어서 찾았다. 그는 농촌 마을이 젊은이를 잡아둘 힘을 잃은 것은 물론이고 남은 사람도 피해의식과 의존심에 젖은 모습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포기할 수는 없다. 건강한 식생활은 거기에 적합한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일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시티 운동이 그런 사례다. 세계 100여개 마을이 인증을 받았는데, 전남 담양군 창평면 등 우리나라 마을 4곳이 지난해 12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포함됐다. 고유의 음식과 농업 전통을 존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생산·소비 형태를 구축하려는 실질적 시도가 절실한 때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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