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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우리들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등록 2008-12-26 19:40

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

30대 초반에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한 적이 있다. 환자는 이기적이기가 쉬워서 자신의 처지만 생각할 뿐 주변 사람의 고통을 잘 헤아리지 못한다. 나 역시 병원에 거의 살다시피 한 아내의 고생에 대해서는 무심했다. 그런데 퇴원 뒤 아내가 의외의 말을 했다. “병원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 가운데 하나였다”고.

그 의미를 깨닫는 데 한참이 걸렸다. 고통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건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희망이 느리게나마 이뤄지기 때문이다. 내가 생사의 기로에서 헤맨 건 첫 한 달 정도였고 나머지는 신체 기능을 하나둘 회복시키는 기간이었다. 앞날을 내다볼 수 없는 상태를 지나 현실이 손에 잡혀가는 과정은 그 자체가 기쁨이다. 미래를 기획하는 능력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만의 특권이기도 하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눈앞에 가져옴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 있다. 곧, 앞날을 통제하는 능력이 행복의 필수조건이다. 하지만 우리 뇌는 우리가 미래를 향해 확신 있게 걸어가도록 허락하지 않으며, 따라서 행복을 발견하는 간단한 공식은 없다고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김영사 펴냄)는 말한다. 사람들은 대개 이룰 수 없는 것을 바라거나 현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미래를 이상화한다.

취학 전 어린이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현실에 모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실재론자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이제는 거꾸로 현실이 상상을 제약한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을 꺼내는 것이 새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미래에 대한 생각은 현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실재론자 어린이가 현재주의자 어른으로 바뀌는 셈이다. 현실을 벗어난 미래를 이뤄내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현재와 전혀 다른 미래가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사람은 현실을 떠나 살 수 없고, 착각 없이도 살 수 없다. 필요한 것은 현실과 착각 사이의 절묘한 균형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과 너무 어긋나지도 않는 긍정적 관점을 지니고 차근차근 노력해야 한다. 행복은 이런 균형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균형점을 잡는 데는 각자의 ‘원초적 경험’이 큰 몫을 한다. 이제까지 삶에서 고난을 견뎌내며 단련한 자신만의 크고작은 승리 경험이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이 경험은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되살아나 자아를 지탱해준다.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이 장애를 없애기 위해 지불하겠다는 비용보다는, 장애가 없는 사람이 그런 장애를 피하기 위해 지불하겠다는 비용이 항상 훨씬 크다. 원초적 경험의 차이만큼 균형점이 다른 탓이다. 원초적 경험은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이다. 전쟁과 식민지 시절의 고난, 군사독재·민주화·산업화 시대의 고통, 아이엠에프 경제위기의 어려움 등이 공동배경을 이룬다. 지금 지구촌을 덮친 경제위기 또한 앞으로 많은 이에게 원초적 경험이 될 것이다.


행복하냐고 묻기조차 미안한 때다. 하지만 행복은 있다. 현실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데서 행복이 온다. 물론 그 전에 현실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믿을 만한 균형점을 설정해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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