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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연쇄살인에 대한 사회의 책임

등록 2009-02-20 19:58

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

경남 창녕에서 억새 태우기를 구경하다 네 명이 숨지고,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은 흥밋거리로 포장된다. 새롭고 자극적인 것에 호기심을 갖는 게 사람 심리라지만, 날카로운 이성을 작동시키지 않으면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결과가 생기기 마련이다.

연쇄살인 자체가 흥미로운 요소를 갖고 있는 건 사실이다. 연쇄살인범이라는 캐릭터는 이미 오래전부터 대중예술에서 영역을 구축했다고 <연쇄살인범 파일>(휴먼앤북스 펴냄)은 말한다. 식인종 한니발이 온갖 살인을 저지르는 영화 <양들의 침묵>(1991)은 수억 달러를 벌어들였고, 연쇄살인범을 주제로 한 문학·미술·음악 작품도 적잖다. 미국에는 연쇄살인 장소를 관광상품으로 엮은 ‘사이코 투어리즘’도 자리를 잡고 있다.

연쇄살인(serial killing)은 대량살인(mass murder)이나 연속살인(spree killing)과 다르다. 미국 연방수사국은 공식적으로 연쇄살인을 “사건 사이에 냉각기를 둔 채 세 곳 이상에서 세 차례 이상 살인을 저지르는 것”으로 정의한다. 연속살인은 성적 관련성이 매우 중요한 성범죄다. 연쇄살인범도 비슷한 성적 환상을 키우지만 상대를 지배하고 고문하고 살해하는 쪽으로 치우친다. 대량살인은 다수를 살해한다는 사실말고는 연쇄살인과 비슷한 점이 거의 없다. 대량살인범은 연쇄살인범과 달리 실패한 인생을 괴로워한다.

연쇄살인범을 보고 누구나 가지는 의문은 그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점이다. 연방수사국은 연쇄살인범의 일반적 특징을 열 가지로 요약한다. 영리하고 지능지수가 대개 높다, 그러나 학업 성취도는 낮다, 어릴 때 가정환경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가계 안에 정신의학적 문제와 전과·알코올중독 전력이 있다, 어린 시절 정신적·육체적 또는 성적으로 심한 학대를 받았다, 남성적 권위를 지닌 이들과 마찰을 빚으며 여성에 대해 심한 적대감을 나타낸다, 정신의학적 문제를 일찍 드러낸다, 세상에 적개심을 품는다, 정상에서 벗어난 성행위에 계속 몰입한다 등이 그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대부분 백인 독신남성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런 특징을 다 지녔다고 해서 저절로 연쇄살인범이 되지는 않는다. 범죄를 저지르기에 적합한 여건과 본인의 의지·능력이 결합해 실행에 옮겨지는 것이다. 따라서 연쇄살인 사건 발생에는 사회가 책임져야 할 몫이 일정 부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이다. 연쇄살인범을 규정하는 특징들은 모두 성인이 되기 전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사람이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도록 교화하고 지원하기보다 제도권 바깥으로 내치는 데 익숙하다. 치안 역량을 말하기에 앞서 공동체적 노력이 더 요구되는 까닭이다. 연쇄살인은 고대부터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 그 빈도가 높아졌다. 다른 사람에게 무심하고 경쟁을 강요하는 현대사회는 그런 소지를 키운다. 연쇄살인은 우리 모두를 향해 울리는 경고의 종이다.

불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불을 책임있게 잘 다뤄야 된다. 연쇄살인 역시 흥밋거리에 머물러서는 없어지지 않는다. 청와대가 연쇄살인 사건을 여론조작 수단으로 활용하려 한 것은 충분한 안전조처 없이 불구경을 시킨 것보다 더한 파렴치한 행위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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