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도강추] 미국 CBS 범죄수사극 ‘C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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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이고 선악은 있는지
끝없이 묻고 내버려둔다 나는 소위 잘나가는 영화나 드라마는 절대 안본다. 사람들은 ‘아웃사이더 기질이야!’라고 쉽게 단정하고 나는 ‘그런가?’ 가벼이 답하지만, 남 잘난 꼴을 절대로 못보는 내 속좁음을 나는 안다. 그런 내가 를 볼 리 만무하다. 여러 시즌을 반복하며 미국 최대의 시리즈물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그것을 외면할 이유가 충분했다. 그런데, 시간이 남아돈 게 문제다. 그 시리즈물을 보는 내내, 그것을 볼 수 있다는 즐거움에 맘이 설레고, 보고 나면 “염병!” 질투심에 생욕을 하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남녀간의 사랑, 가족간의 갈등만으로 대여섯 편의 장편드라마를 써온 나에게 는 ‘언제까지 그따위 단세포 공식에 얽매여 있을래, 인생 그렇게 단순해? 머리가 있음 ‘생각’을 좀 해보지’하며 본때를 보여준다. 철학과 드라마의 합류가 절대로 가당치 않다고 생각한 나에게 그들은 “그게 왜 안돼? 안할 뿐이지”를 증명한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답이 없는 질문은 없다. 답을 구하려면 질문을 잘해라. 질문 속에 답이 있다…너 자신을 알라. 나는 내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은 너무도 알고 있다” -소크라테스. 길 그리섬 반장은 철통같이 객관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리섬이 부하직원 사라에게 무리하게 일을 시킨다. 어느 날 사건이 터졌는데, 사라가 비번이라고 바에 가서 논 게 시발이었다. 사라는 부당한 명령을 일단은 받아들이고 이후 그리섬에게 말한다. 아니 묻는다. 소크라테스처럼. 사라 : 당신이 내게 일이 없을 땐 인생을 즐기라고 해서, 일이 없는 날 바에서 놀았다. 그리섬: (사라를 물끄러미 보기만 하는) 사라 : 나에게 즐길 수 있을 때 인생을 즐기라고 말한 당신과, 놀았다고 벌을 주는 당신. 당신은 누군가? 카메라가 다시 사라의 쪽으로 가면 사라는 이미 없다. 그러나 그리섬은 ‘당신은 누군가?’라는 질문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멍해 있다. 다음 회에도 그 다음회에도 그리섬은 그것에 대해 변명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와 부처가 “‘이것은 이렇다’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그것은 아니다’”라고 했던 철학적 사고의 근거를 그는 흉내 아닌 온몸으로 이해하고 고민한다. 다른 수사관 캐서린의 일화는 또 어떤가. 이혼하고 사춘기 딸을 키우며 매일 딸의 안전이 불안했던 캐서린은 어느 날 딸에게 낯모르는 사람의 호의를 받다가 죽은 또래 아이의 시신을 보여주며 ‘너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무지막지한 경고를 하기에 이른다. 당연히 딸은 놀라 구역질을 하며 뛰쳐나가고, 그 광경을 지켜본 법의학자가 말한다. “경고와 충고는 다르다”고. “적은 경고하고 친구는 충고한다”고 말한 철학자가 누구더라? 왜 그걸 잊었지, 나는! “한번만 더 그래봐, 가만 안둬!”하며 부모가 자식에게, 애인이 애인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경고했던 내 드라마 때문에, 한숨이 절로 난다. 그런데 캐서린의 답변은 날 더욱 실망(?)스럽게 한다. “내 딸이에요!”라니. 정말 깔끔하고 고혹적이기까지 한 그녀가 이렇게 천하게 소유욕을 드러내며 강변하다니. 그런데 어쩌겠는가, 사람의 한계가 이 지경인 것을. 작가는 이후에도 캐서린의 행위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이해하지도 않는다. 내버려 둘 뿐이다. 인물의 결점과 오류를 이해하거나, 받아주거나, 외면하거나, 뭐든 하나 선택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차원적 내 드라마와는 차원이 다르다. 내버려 둔다고 세상이 망할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극중 인물에게, 나 자신에게 ‘시간’을 주지 못하고 괴롭히는가. 생각 없다. 인간의 한계를, 모순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사랑과 가족 이외에도 다른 대상에게 가지는 욕정과 욕망에 대해, 진정한 친구에 대해,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디서 왔는지, 과학이 팽배한 시대에 정말 신은 있는지, 진짜 선과 악이 존재하는지를 정말 마냥 묻기만 하는 이 드라마를 나는 이제 그만 질투하려 한다. 그리고 공부하려 한다. 모른다는 걸 알아챘으니,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무지타파의 시작은 무지의 인정이다”-소크라테스, 부처). 제발 그렇다고 하여, 내게 용기를 주라, 시청자여! 노희경/ 드라마 작가, 사진 스카이라이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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