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순진한 남자의 미스터리한 영화

등록 2016-11-21 14:49수정 2016-11-21 19:44

이용철의 ‘별점왕’ 홍상수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전원사 제공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전원사 제공

올 상반기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영화 감독은 홍상수였다. 스캔들 이후 그가 앞으로 어떤 신작을 낼 수 있을 관심이 모아지던 참에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이 개봉했다. 결과는? 역시 감독이 관심을 받은 것과 그의 작품에 대한 궁금증은 별개다. 흥행 면에서 홍상수 영화의 특징은 소규모로 개봉해 3만에서 5만 명 사이의 관객을 꾸준히 모은다는 점이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의 스크린 수와 상영 횟수는 전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았음에도 개봉 10일째인 20일 1만명을 넘기는 것을 보아 관객의 수치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 이후 홍상수 영화에 대한 어떤 리뷰도 쓰지 않았다. 그의 영화가 한국의 아트하우스를 대표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그의 세계를 좀 더 큰 틀 안에서 조망하고 싶어서 평가를 유보하는 중이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주제에 다른 평자들의 언급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전한다.

일부 평자를 제외하고 한국 평단은 대체로 홍상수 영화에 상찬을 바쳐왔다. 고만고만한 한국 영화들 사이에서 그의 영화가 지닌 예술적 독보성은 그 가치를 인정해 마땅하다. 그렇다고 해서 평자들이 관객들의 반응을 재단할 수는 없다. 어떤 비평가는 “주변 반응에 현혹되지 말 것,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스캔들이 불거져 논란을 낳은 다음 한 인물과 그의 작품에 선입견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비평가가 그런 관객더러 현혹이란 용어를 써가며 단속할 자격은 없다. 게다가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관객이 더 잘하는 영역이다. 이런 오만이야말로 감독과 관객 사이에 장벽을 쌓는다.

홍상수의 영화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동어반복’이란 표현이다. 홍상수는 자기가 통과한 세계에 대해 영화를 만든다. 좁게는 구애에 관해, 넓게는 인간이 사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영화가 반복되는 건 당연하다. 그게 오히려 그가 인간임을 드러낸다. 나는 홍상수가 사랑과 삶에 대해 순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극중 대사를 듣노라면 20대 남자가 진즉 깨우쳤을 것을 뒤늦게 깨달은 중년처럼 느껴지지도 한다. 단, 그것은 홍상수 영화의 진경과 상관이 없다. 홍상수 영화는 결코 메시지나 주제를 전달하려는 영화가 아니다. 그의 영화를 보고 무엇을 깨달았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믿지 않는다. 이번 영화를 보고 어떤 멍청이들은 “그러게, 사랑은 모르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걸 모르고 살았단 말인가.

이용철 영화평론가
이용철 영화평론가
홍상수는 자신의 순진함을 실로 기이한 형식으로 표현한다. 홍상수는 언제나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한 번도 같은 영화적 언어를 반복한 적이 없다. 이번 영화와 비슷한 주제를 공유하는 듯한 부뉴엘의 유작 <욕망의 모호한 대상>(1977)과 키아로스타미의 유작 <사랑에 빠진 것처럼>(2012)과 비교해 보면 홍상수의 독창성이 드러난다. 남자와 여자가 헤어졌다. 목발을 짚고 다니는 남자에게 두 분신이 생겨난다. 남자가 자신과 다른 생김새의 남자를 만들어낸 것과 달리, 여자는 영악하게도 같은 모습의 여자를 두 명 더 만든다. 여섯은 각자의 시간에서 세 개(혹은 그 이상)의 조합을 빚는다. 그들의 오해와 욕망과 환희를 그래프로 그려 보면 이보다 흥미진진하게 사랑 다툼을 그린 영화가 없음을 알게 된다. 순진한 홍상수씨에겐 관심이 없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미스터리한 영화적 언어는 항상 궁금하다. 그게 바로 당신의 것이다.

이용철 영화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