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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오타쿠들, 영화를 축제로 만들다

등록 2017-01-23 14:52수정 2017-01-23 19:52

이용철의 별점왕

너의 이름은. ★★★☆
어쌔신 크리드 ★★★☆

영화에 별점을 줄 때 유별나게 신경이 쓰이는 경우가 있다. 저패니메이션이나 게임 원작 영화를 평가할 때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장르를 지지하는 팬들의 열광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보통 ‘오타쿠’로 불린다. <너의 이름은.>과 <어쌔신 크리드>는 더 부담스러웠다. 전자는 자국에서의 기록적인 흥행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저패니메이션의 자리에 오른 영화이며, 후자는 게임 팬들 내부에서도 남다른 평가를 받는 작품 아니던가. 이럴 때 괜히 팬들보다 잘난 체하면 수모를 겪게 된다. 영화로만 평가해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 건 마찬가지다.

<어쌔신 크리드>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어쌔신 크리드>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너의 이름은.> 미디어 캐슬 제공
<너의 이름은.> 미디어 캐슬 제공
그래서 이번엔 두 작품이 지닌 사회적 의미에 접근하기로 했다. <너의 이름은.>이 그렇게 되돌리고 싶어 하는 시간은 ‘세월호’의 그것으로, <어쌔신 크리드>가 설파하는 선택의 소중함은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연결해 읽었다. 하나의 사건보다 죽은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결국 기억해야 하는 건 아이(들)의 이름이다”라고 썼고, 역사의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는 뜻에서 “자유롭게 깨어 있으라”고 강조했다. 애니메이션 관객들이 주로 찾는 한 온라인 사이트 게시판에서 보니 이번엔 별점에 대한 반응이 달랐다. 오히려 왜 그런 비평을 받았는지 궁금해하고 해석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뭔가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마니아들의 취향이라 하는 애니메이션인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2010)의 극장판을 보고 “163분짜리 애니메이션이 재미있어서 드라마를 찾아보기로 했다”고 말했다가 팬들로부터 갖은 욕설을 들었다. 심지어 좋게 평가했음에도 그들이 사랑하는 작품에 대해 평론가가 말을 거드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태도를 보였다. <에반게리온>은 나도 오랫동안 보아 왔던 입장에서 좋은 평을 남겼지만 그것도 아웃사이더의 곁눈질 취급을 받았다. 애니메이션 팬들은 공격적인 반응이 많았고 게임 팬들은 아예 영화평론가의 평가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용철 영화평론가
이용철 영화평론가
그런데 <너의 이름은.>과 <어쌔신 크리드>를 두고 비평에 대한 토론이 제법 활발해지니 나도 겸연쩍어졌다. 물론 한국에서 오타쿠는 여전히 별종 집단이다. 오죽하면 <너의 이름은>이 상영되면서 오타쿠들의 행동이 문제가 되자 장르 마니아들은 민폐를 끼치는 오타쿠를 ‘혼모노’라고 부르고 자신들의 명예를 지키려고 할까. 그런데 혼모노든 오타쿠든 그들의 행태는 과거의 그것과 사뭇 다르게 감지된다. 그들의 새로운 기운은, 소규모 개봉으로 13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인 <러브 라이브! 더 스쿨 아이돌 무비>로 시작해 <너의 이름은.>으로 한 정점에 올랐다. 선배 오타쿠에 비해 새로운 오타쿠들은 덜 배타적이고 덜 어두운 듯 보인다. 자기가 좋아하고 보고 모으는 것들을 표현하는 데 적극적인 것은 여전하지만,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걸 반기는 쪽이다.

일각에서는 그들의 유다른 행태에 눈길을 찌푸리는 모양이다. 글쎄, 나도 모든 걸 지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엄숙한 태도로 모든 영화를 대하는 것보다 가끔 어떤 영화는 축제처럼 즐기는 게 무어 나쁜가 싶다. 혁명은 축제처럼 시작되는 것이다.

이용철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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