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무대X파일 - 파가니니와 캐넌
브랜드 마케팅은 문화계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홍보 전략이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는 역시 모차르트다. 1890년 출시되어 116년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초콜릿은 현재 세계 50개국에 수출되는 오스트리아의 특산품으로 자리잡았다. 올해 마침 탄생 250돌을 맞이하면서 오스트리아는 ‘모차르트 특수’를 최대한 누릴 전망이다.
모차르트의 이름이 브랜드화한 것은 정작 음악가가 죽고 난 뒤 산업시대 이후의 일이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아티스트의 생존 당시 브랜드 마케팅이 최초로 시도된 인물은 니콜로 파가니니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싶다.
‘파가니니’라는 이름에 19세기 빈이 열광한 수준은 거의 우리 시대 대중 스타의 그것과 맞먹는다. 1828년 3월29일 빈 데뷔로부터 약 보름 뒤 있었던 두 번째 연주회에는 빈에 거주하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모든 황족들이 참석했다. 연주회장은 시작 3시간 전부터 초만원이었고 입장권을 구하지 못해 발길을 돌린 관객만 수천명에 이르렀다. 파가니니는 그해 여름까지 빈에 머물며 열두 번의 연주회를 열었으며, 빈의 상품점은 그의 초상화가 새겨진 코담뱃갑, 냅킨, 넥타이, 파이프, 당구 큐, 분갑으로 가득 찼다. 심지어 공연 입장권 값인 5굴덴(약 40파운드)짜리 지폐는 ‘파가니너’(Paganiner)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파가니니의 이름을 통하여 가장 유명해진 상품은 다름 아닌 그의 악기, 과르네리 델 제수였다. 이전에 소개한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비오티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현악기가 되었다면, 여러모로 스트라디와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과르네리의 잠재력을 대중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 인물은 파가니니였다.
1742년 연주여행을 다니던 파가니니는 도박 빚 때문에 악기를 저당잡힌 채 바이올린 없이 리보르노에 도착했다. 공연을 위해 자신의 악기를 빌려주었던 극장주 리브롱 대령은 파가니니의 연주를 듣고 난 뒤 악기의 진정한 주인이 나타났다며 파가니니 말고는 아무도 연주하지 않는 조건으로 그에게 이를 무상으로 넘겨주었다. 그 박력 넘치는 소리로 인하여 ‘캐넌’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바이올린은 그 뒤 파가니니의 대명사가 되었다. 1837년 제노바에서 사망한 파가니니는 ‘캐넌’을 제노바 시청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겼으며, 아직까지 파가니니의 다른 유품과 더불어 그곳에 안치되어 있다. 이 캐넌을 연주할 수 있는 특권은 1년에 한 번,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축제일인 10월12일 ‘프레미오 파가니니’라는 국제 콩쿠르의 우승자에게만 주어진다. 살바토레 아카르도, 지노 프란체스카티 등 파가니니 작품의 연주에 남다른 실력을 보였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캐넌’을 연주한 음반을 남겼다. 재즈 바이올리니스트로는 유일무이하게 레지나 카터가 이 바이올린을 연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공연칼럼니스트 alephi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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