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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 뮤지컬 ‘한여름 밤의 악몽’

등록 2006-08-20 21:23수정 2006-08-20 21:28

뜯어볼 것 많은 ‘셰익스피어로 놀기’
우디 앨런의 영화 〈마이티 아프로디테〉(1995)에는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가 나온다. 주인공이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받는 대상이다. 그리스 비극에서 코러스가 주인공과 대거리하는 코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절묘한 결합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지적인 웃음이다. 연극 〈한여름 밤의 악몽〉(9월10일까지 아룽구지 소극장)을 만든 신예 연출가 박재민 역시 셰익스피어를 통해 ‘연극 장르와 놀기’를 실현했다.

우리 마음속에 선과 악이 갈라지기 전, 꿈과 악몽은 공존했으리라. “오베론, 별 희한한 꿈을 다 꾸었어요! 제가 당나귀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셰익스피어의 대표적 희극 〈한여름 밤의 꿈〉에서 요정의 여왕 티타니아는 이렇게 외친다. 그 꿈은 행복했지만 깨어나고 보니 악몽이다. 여기서 시작했을까. 박재민이 번안한 〈한여름 밤의 악몽〉은 꿈과 악몽의 차이를 좁히면서 희극을 약간의 공포가 섞인 귀신 이야기로 바꾼다.

폐허가 된 숲 속 성황당 앞에서 개화기 복장의 젊은이들이 사랑싸움을 벌인다. 익히 알려진 〈한여름 밤의 꿈〉의 주인공들, 허미어(소선)와 라이샌더(춘풍), 헬레나(순진)와 디미트리어스(길상)다. 당돌하리만치 솔직하고 그래서 우스꽝스럽기도 한 연인들이다. 이미 숲 속에선 숲 속 혼령의 왕 임황(오베론)과 도당목의 여왕 목후(티타니아) 사이에 또 다른 사랑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이 연인들의 사랑싸움에 끼어들면서 연극에는 사랑의 변덕과 아이러니를 둘러싼 담론이 흐른다.

연극은 현실 속의 환상이고 현실은 연극 속의 환상이다. 이것이 셰익스피어가 〈햄릿〉이나 〈한여름 밤의 꿈〉의 극중극을 통해 보여준 연극의 비밀이다. 이 비밀스런 관계의 메커니즘을 통해 그는 현실에 대해 수없이 많은 논평을 하고, 자연과 인간, 삶과 예술의 신비를 끝없이 파헤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한여름 밤의 악몽〉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고 있는 이 메커니즘을 발견한다. 그 핵심에 ‘지금 여기’의 언어로 재치 있게 변형된 그의 언어가 있다. 극중극 연출 역의 라미란(김희원과 교체출연)이나 ‘말괄량이 삐삐’ 같은 캐릭터로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달팽이 역의 홍예성(정민지와 교체출연)은 관객을 폭소의 도가니로 밀어 넣는 주인공들이다. 1992년 학전소극장에서 공연된 최형인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보텀 역의 권해효와 헬레나 역의 구혜령이 보여주었던 매력이 떠오른다.

예술을 추구하는 아마추어 극단의 희극적 비애, 살짝 스치는 〈지킬 앤 하이드〉 패러디, 한 많은 귀신 말명을 통해 현실과 기묘한 끈을 연결하는 기법까지, 뜯어볼 것이 참 많은 연극이다. 아마추어 분위기이되 숨겨진 프로 같은 연출! 하지만 왜 이 연극을 뮤지컬이라 했을까? 뮤지컬이 아니어도 연극은 원래 음악적인데. 배우의 말과 몸짓은 이미 춤과 노래인데.

노이정/연극평론가 voiv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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