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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 서울세계무용축제의 빈센트 만쭈이

등록 2006-10-22 20:06

아프리카 토속춤에서 ‘영혼의 놀이’로
올해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의 ‘발견’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빈센트 만쭈이의 춤이다. 〈비어 있는 영혼〉 〈존재의 터널〉 그리고 〈숨쉬는 껍데기〉라는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제목은 관념의 냄새가 났다. 하지만 실제 무대에서 본 것은 혼자서 떠들썩하게 노는 광경이었다. 단순하면서도 투명한 유희정신이었는데, 그것은 ‘솔’이 어떤 느낌인지 춤으로써 보여주고 있었다.

언젠가 탈춤의 대부 채희완과 시인 김지하는 한국의 거리 춤꾼들이 지향하는 흑인풍의 춤에 대해 ‘초월에 대한 희망’으로 평한 적이 있다. 확실히 만쭈이가 추는 아프리카 토속춤은 조상숭배나 대지와의 교감이란 제의에 가까웠고, 특정한 역사의 비극이란 불쏘시개 없이도 초월할 수 있다는 전망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국의 춤을 말할 때, 흔히 상용하는 원시적인 답지저앙(땅을 밟으며 굽혔다 뛰었다 하는 것)이나 수족상응(오른손이 오른발과, 왼손이 왼발과 어울리는 것) 같은 개념이 아프리카 춤에서도 그대로 엿보였다. 이것은 매우 엉성하면서도 묘하게 균형을 잡고 자유자재로 대지를 호흡한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었다.

하지만 만쭈이의 작업이 엄연히 지역성의 영역에 있으면서도 동시대의 안무로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돈된 극장식 공간 속에 자신의 춤을 모셔가는 방식이 매우 개념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춤은 단순해 보이면서도 또한 복합적이다. 개명한 아프리카인답게 발레, 현대무용, 인도춤, 발리춤에다 태극권까지 섭렵한 탓에 그의 춤은 이미 다양체로서의 리듬이 풍부했다. 좀더 우아하고 절제된 단절이 행해졌다가도 다시 접속하는 춤의 연속적 변주는 자유로우면서 거친 에너지로 가득했다.

또한 무대 한가운데에 물동이를 놓아두고 스스로에게 아프리카 전통의 세례 제의를 진행하면서 어느새 천진난만한 영혼의 놀이라는 코드를 펼쳐보이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관객에게 그 물장난의 대지로 초대하는 것까지 자연스러웠다. 자신이 배운 코드들을 용도 변경하지 않으면서도 어느새 닫힌 공간을 열린 공간으로 바꾸는 그의 ‘솔’풍 안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이미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는 스스로 ‘아프로-퓨전’으로 명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발상은 이미 상당히 공유되고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에 전주영화제에서 본 존 아캄프라의 다큐멘터리 〈역사 속의 마지막 천사〉가 주장한 ‘흑인 미래주의’와도 상통하고 있었다. 주로 흑인 음악이 서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어떻게 복잡하고 창조적인 과정을 펼쳐낼 수 있는가를 밝힌 이 필름은 모순적인 전략을 소개하고 있었다. 즉 자신이 기원했던 지점으로 회귀하면서도 현실을 적극적으로 욕망하는 것이었다.

만쭈이 역시 지극히 원형에 가까운 제의 형식을 반복하고 있지만, 그것이 여전히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생명과 무의식, 에콜로지의 가치를 새롭게 향수하도록 만든다. ‘나는 자연이다, 나는 영혼이다, 나는 너다’같이 통합적으로 세계를 인식하면서 아이의 무구한 놀이판을 만들어가는 것이 현대무용의 어떤 결여를 반성하게 한다.

김남수/무용평론가 anacroid@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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