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빈필 내한공연 모습
선곡 아쉽지만 역시 클래식의 ‘맹주’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무대에서 열리던 신년음악회의 주인공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이 21일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다. 비싼 티켓 값, 전석 매진 소문이 공연 전부터 회자하였기에 이들의 연주는 음악적 기대와 음악외적 관심 속에 이루어졌다. 음악회는 모차르트의 교향곡 36번 린츠,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슈만의 서곡, 스케르초와 피날레,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9번으로 꾸며져 있었다.
첫 곡으로 연주된 모차르트의 ‘린츠’에서 이들이 그동안 방송으로 보았던 신년음악회의 주인공임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모차르트 당시와 비슷한 편성의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음향은 아름답고 섬세했으며 심각하지 않으나 가볍지도 않았다. 연주는 유려하고 자신감 있었으며 단원 간에 보이는 음질과 음량의 조화로움에서 이들의 능력과 함께 오랜 기간 같이해온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사라 장의 협연으로 이루어진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에서는 그녀의 뛰어난 기교와 음악적 완숙미가 돋보였고 솔리스트와 교향악단과의 조화도 잘 이루어졌다. 슈만의 서곡, 스케르초와 피날레에서는 각 악장의 개성과 특성을 섬세하고도 다양하게 만들어가면서도 작품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유지했고, 쇼스타코비치에서는 인상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선율의 표현에서 단원 각자의 기량을 엿볼 수 있었고 지휘자가 이끌어내는 악기 간의 균형과 조화 그리고 섬세한 강약 조절 등이 눈에 띄었다.
빈 필의 연주는 분명 아름답고 훌륭했다. 그러나 이날의 선곡은 사라 장의 능력과 음악적 성장과 변화를 본격적으로 즐기기에도 미흡했고, 160년 동안 지켜온 오케스트라의 전통과 리하르트 바그너가 언급했던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오케스트라”라고 말한 만큼의 기량을 보여줄 수는 없는 레퍼토리였다. 또한 21세기를 대표할 지휘자로 꼽히는 게르기예프의 음악적 통찰력과 작품해석 능력을 충분히 경험하기에는 더더욱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선곡이었다. 더욱이 다음날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연주하기로 되어있던 레퍼토리는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된 작품들보다 더 대중적인 곡들로 짜여 있었는데 국내 클래식 팬들의 수준에 대한 그들 나름의 판단인지, 기업적인 자치체제가 있다는 이들의 상업적 접근에 의한 장소선택인지 알 수 없지만 정통 클래식의 “맹주”로 불린다는 이들에게 걸었던 기대가 높았던 만큼 실망도 컸다.
최근에 서울을 다녀가는 연주단체들의 면면을 보면 런던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 등 가히 세계 최고, 최상의 단체들이었고 이들이 보여준 공연내용들은 매우 다양했다. 이번에 내한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클래식 음악이 경쾌하고 우아하며 즐겁고 행복한 저녁을 선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왕치선/클래식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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