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족 외로움, 낭만만으로 채워질까
현대인은 외롭다. 우울증과 함께 외로움은 현대적 삶의 증후일 터,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후기 산업사회의 말기적 증상인 외로움에 대한 토로가 도처에서 일어나는 듯싶다. 지난봄 영화 〈가족의 탄생〉에서는 가족이 해체되다 못해 그 속의 개인들이 ‘타인’을 온전히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더니, 늦여름이 가면서 젊은 싱글족의 외로움에 대한 보고서들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특히 30대 젊은 작가, 연출가, 무용수들이 보는 외로움은 ‘원룸의 풍경’과 맞물려 있다. 그 공간이 텅 비어 있든 물건들로 꽉 차 있든 이들이 체감하는 외로움의 정도에는 차이가 없다. 예를 들면, 〈506호〉(8.31~9.2. 엘아이지 아트홀)라는 다분히 디지털적 제목의 공연에서 춤꾼 박근태는 “늘 비어 있는 자신의 방”에서 자신의 존재와 부재 사이의 틈을 발견한다. 맨발에 수술복이나 환자복을 연상시키는 녹색 가운을 입고 혼자 묵묵히 사발면을 먹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그가 부재하는 사이 빈 공간을 채우는 무수한 다른 존재들의 생성과 만남을 그리면서 그는 혼자 사는 공간의 섬뜩한 깊이와 충돌한다.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30대 작가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무대에 오르는 〈서른두살, 원혜〉(최창열 작, 이영석 연출, 9월17일까지)에서도 예의 그 숫자는 제명의 주요한 기표로 자리한다. ‘서른둘’이라는 나이에서 누군가는 예수나 전혜린의 죽음과 연관된 33이란 숫자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종말에 가까운 때, 혹은 더는 미래가 없는 때.
혼외 정사로 출생한 원혜(문형주)는 지금도 주위 사람들의 떠남과 일상적으로 직면하고 있다. 그에겐 안정된 직장과 안정된 주거공간이 있지만, 자신만의 공간에서 재즈 음악을 들으며 담배와 맥주로 일상을 보내는 그에게 인생은 똑같은 풍경의 연속이다. 그의 외로움은 옆에 누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멈춰 있는 인생의 느린 속도감에서 발생하는 것이리라. 이 시대 많은 여성들처럼 ‘칙릿’(chick-lit)에 나올 법한 삶의 철학을 구가하면서도 그의 삶은 본원적으로 외롭다. 그의 집에 찾아오는 고3 수험생 조카 정식(이대관)은 이 외톨이 이모와 만남에서 삶의 해방구를 찾는다.
작가 최창열은 30대 싱글 여성의 초상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잡아내면서도 그의 내면을 지나친 자신감으로 채움으로써 문제의 핵심을 비켜간다. 새롭기보다는 오히려 고전적인 ‘잘 짜인 극’의 전통에 서서 점증적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연극이지만 흥겨운 말의 성찬으로 이루어진 그 일관된 짜임이 오히려 작위적이고 관념적이다. 요즘 여성들의 개방된 성 태도와 ‘누나 문화’ 위에 선 이 극은 원혜의 깨지지 않는 견고한 내면으로 인해 매끈한 낭만극에 머문다. 우리 몸에 새겨진 질서와 균열이 드러나지 않는 한 연극은 무로 돌아가 버린다는 공식이 여기서도 방증된다.
노이정/연극평론가 voiv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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