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내용과 현황 조사결과
위기의 한국경제 다시 상생이다
1부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새로운 도전 ④ 외국계 임원들의 구매조달
1부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새로운 도전 ④ 외국계 임원들의 구매조달
서울 여의도에 있는 엘지전자 최고구매책임자 톰 린튼 부사장의 사무실에 가면 ‘18가지 필수품 요약’이라는 커다란 종이가 눈에 들어온다. 각 사업부문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재료나 부품들의 글로벌 상황판이다. 린튼 부사장은 “구매를 하는 사람은 어떤 물건을 봐도 공통으로 쓰이는 게 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며 “세계시장에서 이 필수품이 어떻게 거래되고 있는지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빠른 판단을 내리는 게 선진 구매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최근 들어 ‘글로벌 기준’의 구매방식에 대해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 엘지전자는 사업부문별로 각개전투를 벌이던 구매부문을 전사적으로 총괄하는 시스템을 갖추며 구매 효율성을 크게 높였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구매정보 시스템’을 구축해 필요한 사양과 주문서를 전송하면 전세계 해당 업체가 납기나 부품단가를 즉각 응답하는 체제를 갖추려 하고 있다.font>
엘지전자, 구매 총괄시스템 갖춰 효율성 증대
대-중소기업 수직적 상하관계는 최대 걸림돌
하지만 100% 계약에 기반하고, 완전경쟁이 이뤄지는 서구식 구매 관행이 제대로 정착하기엔 우리나라의 대-중소기업간 협상력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유현 정책개발본부장은 “판로 개척이 시장경제의 출발인데 우리 중소기업은 모기업과 폐쇄적인 관계인데다 ‘가격 흥정’이 안 된다”며 “아직도 구두발주가 20%가 넘고, 계약서가 있어도 바로 이듬해 단가 인하를 통해 비용 전가가 이뤄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름 밝히길 꺼린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은 “우리의 산업성장 전략 자체가 모기업의 요구에 따라 물량과 가격을 맞춰온 중소기업들의 출혈이 기반이 됐다”며 “국내 중소기업과의 긴밀한 관계 없이 아직 우리 대기업들은 글로벌 기업을 따라잡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 대기업 임원은 “솔직히 예전엔 월초 들어온 물량을 불량으로 반품시켜 월말에 싸게 구매하거나, 일부러 검사를 지연시키는 치사한 방법을 많이 썼던 게 사실”이라며 “대만 부품업체들이 가격이 싸다고 말하지만 그쪽으로 물량을 돌리면 지금처럼 ‘저스트인타임’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걸 대기업도 이제 스스로 잘 안다”고 말한다.
단순 단가 인하가 아니라, 원가 절감이나 현장개선 방안을 공동으로 찾아 생산성을 높여주고 그 성과를 단가 인하 때 반영하는 쪽으로 대기업들이 눈을 돌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엘지디스플레이의 상생협력팀은 백라이트 등 5개 팀으로 나눠 협력업체의 생산성 향상 활동 과제를 지속적으로 펼친다. 램프업체인 우리이티아이의 경우 함께 장비의 동작을 일일이 분석해 불필요한 동작을 없애는 등 현장개선 작업을 벌여 생산성을 30% 이상 올렸다. 김현목 상생협력팀장은 “기존에 양산 중인 제품의 스펙들을 다시 검토·재조정해 부품업체들의 부담을 줄이는 작업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엘지전자·삼성전자·포스코·케이티 등 20여개 대기업이 도입 중인 구매조건부 신제품 개발 사업도 구매의 작은 변화다. 다른 판로를 개척하도록 모기업의 ‘브랜드’를 활용해 도와주는 움직임도 있다. 지엠대우는 희망하는 부품사를 선정해 한국 자동차부품 전문전시회 및 수출상담회를 각 지역에서 열고 있다. 신규거래요청 등록절차를 100% 온라인화한 엘지전자의 서플라이어 포털(lgesuppliers.com)처럼 납품업체 선정 과정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노력도 눈에 띈다. 엘지전자의 린튼 부사장은 “전략적 소싱과 원가 절감,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을 높이는 게 구매의 원칙이어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진다면 유대관계와 윈윈전략을 강조하는 한국 기업들이 더 큰 강점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대-중소기업 수직적 상하관계는 최대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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