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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가계빚 위험”…‘책임 한정 주택담보대출’ 도입론 물꼬

등록 2015-05-24 21:33수정 2015-05-24 22:10

한국은행에 따르면, 집을 사기 위해 빌린 주택담보대출 외에도 신용대출 등을 모두 합한 가계신용 잔액은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1089조원에 이른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은행에 따르면, 집을 사기 위해 빌린 주택담보대출 외에도 신용대출 등을 모두 합한 가계신용 잔액은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1089조원에 이른다. 한겨레 자료사진
[월요리포트] 위험수위 가계빚 안전판 필요하다
“남은 인생은 은행 빚을 갚는 데만 쓰일 거예요. 앞으로 저는 어떤 것도 가질 수 없을 겁니다.” 스페인 톨레도에 사는 마놀로 마르반(59)은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떨어뜨렸다. 마르반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을 온몸으로 겪는 중이었다. 그는 주식투자자도 아니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진행중인 금융회사 펀드매니저도 아니다. 그는 애완동물을 파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평범한 자영업자일 뿐이었다.

마르반을 빚의 수렁에 빠지게 한 데는 부동산 붐이 한창이던 2006년에 산 아파트의 영향이 컸다. 금융위기로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별 탈 없이 해오던 사업이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아파트를 사기 위해 받았던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 상환을 제때 하지 못하게 됐고, 결국 집과 가게는 모두 은행으로 넘어갔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주택가격이 폭락하면서 집과 가게를 처분해도 마르반에겐 갚아야 할 빚이 14만달러(약 1억5000만원)나 남았다.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는 2010년 10월28일치에 ‘스페인에선 집을 압류당해도 빚은 남는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마르반의 이야기를 상세히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부동산시장 상황이나 높은 가계빚 수준은 미국이나 스페인이 다르지 않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주택 압류만으로 빚 고통에서 벗어나지만, 마르반을 비롯한 수천명의 스페인 국민에게 주택 압류는 새로운 고통의 시작”이라고 전했다.

미국인들이 상대적으로 빚 수렁에서 수월하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책임한정 주택담보대출’(비소구 주택담보대출)이라는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채무자의 책임을 저당권이 설정된 주택 가치에 한정한다. 집값이 폭락하더라도 집 열쇠만 은행에 넘기면 주택 관련 빚이 모두 소멸되기 때문에 향후 경제적으로 재기하는 데 한결 수월하다.

안전장치 둔 미국
집값 폭락해도 빚 탈출 가능

금융위 연구용역 보고서
“가계빚 1100조…대비책 있어야”

국내에서도 책임한정 주택담보대출을 도입하기 위해 정부가 내부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한겨레>는 금융위가 지난해 5월 서울대 금융법센터(연구책임자 박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의뢰해 제출받은 ‘비소구 주택담보대출 제도 도입 타당성 연구’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 보고서는 “책임한정 대출은 금융시스템의 안정성과 금융소비자의 보호, 채무자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 도입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제안했다.

금융위 보고서는 책임한정 주택담보대출 제도를 다룬 국내 첫 정부 용역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적용 대상 주택대출 범위를 실거주용 주택으로 한정하면 (이 제도 도입에 따라) 채무자의 전략적 채무불이행 우려도 해소할 수 있다”며 책임한정 대출의 국내 도입을 권고했다. 도규상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은 “책임한정 주택담보대출은 주택가격 붕괴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최소한의 가계 안전판으로서 기능을 할 수 있다. 기존 현행 대출(소구 대출)과 책임한정 대출을 수요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가계빚은 1100조원에 육박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집을 사기 위해 빌린 주택담보대출 외에도 신용대출 등을 모두 합한 가계신용 잔액은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1089조원에 이른다. 국제비교에 쓰이는 자금순환표 기준에 따른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도 지난해 말 기준 164.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치(133.5%)를 훨씬 웃돈다. 가계부채로 인한 가계의 잠재적 부실 위험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집값 하락 압력이 앞으로 점점 커질 전망이어서 가계의 부실 위험에 대비한 안전판으로서 책임한정 대출 도입의 필요성이 한층 강조되고 있다.

주택금융 전문가인 유승동 상명대 교수(경제학)는 “주택가격 하락 위험을 채무자인 가계가 전적으로 떠안고 있는 현행 대출 제도는 불합리하다. 공적자금(주택기금) 대출이나 일정 가격 수준 이하 주택을 담보로 하는 대출에는 채무자의 상환 책임을 한정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책임한정 대출이 시행중인 미국의 언론들은 이 제도가 경기 회복의 속도를 내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평가해왔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013년 2월1일치 지면에 스페인과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 주택시장이 붕괴한 유럽 국가에서 집을 은행에 넘기고도 빚 상환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연을 다뤘다. 이 신문은 ‘남은 빚이 유럽 (경제) 회복을 막고 있다’란 제목의 기사에서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한 미국인들은 집 열쇠를 은행에 넘기는 것만으로 빚을 모두 털어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유럽인들은 집을 잃은 뒤에도 빚의 올가미에 걸려 있다.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전했다.

세종/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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